어쩌면 잘 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예전에는 오전 근무를 마치고 일찍 퇴근하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커피숍이나
도서관 같은 조용한 공간을 찾아다녔습니다.
그게 어디가 됐든 조용히 앉아서 글도 쓰고,
책도 보는 상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하지요.
마치 혼자만의 세상에 주인공이 된 것처럼.
그런데 왜 집에서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 들어서 집을 어떻게든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 싶어서
작년에 평생 처음 내 서재를 만들었습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간사해서
내 서재를 만들어 두고도 욕심이 생겼습니다.
독서대도 근사한 거 하나,
책상도 있어 보이는 거,
거기에 어울리는 모니터...
하나씩 물건이 늘어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일찍 퇴근하면
다른 공간을 찾아다니고는 했습니다.
왠지 그래야 잘 사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서.
종이책 초고를 쓰기 시작하면서
그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공간을 찾아다녀도
옷 갈아입고, 노트북 가방 챙기고 나서면
그만큼의 시간이 줄어드는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노안이 심해지니
노트북 모니터는 다초점으로도 불편해졌습니다.
내 서재의 커다란 모니터에,
잠옷을 입고 자리에 앉아 바로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잠시 졸리면 방석을 베개 삼아
조금씩 졸기도 하는 일상이 더 좋아졌습니다.
아마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건
어디에 있느냐보다,
어떤 상태로 그 자리에 있느냐의 문제는 아니었을까.
굳이 밖에서 그런 공간을 찾지 않아도 좋고,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은 자리.
어떤 차림으로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그 공간이 서재든, 침실이든
그곳에서 읽고, 쓰고, 잠시 졸아도
다시 돌아앉아 하고 싶은 일을 이어갈 수 있는 일상.
이제는 집 서재가 너무 편안해져서
나가지 않으려는 게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어디 운동이라도 가야 하지 않으면
퇴근해서는 '집돌이'가 돼 가고 있습니다. 하하하
어쩌면 잘 살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하고 싶은 일을 가장 편한 상태로 이어가니까요.
다만 이쯤 되면,
탁구든, 배드민턴이든
운동 하나쯤은 시작해야겠습니다.
오늘은 월말 재고조사와
연말 결산을 동시해 해야 하는 날인데,
날은 급격히 추워졌습니다.
한 해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오면 저녁일 겁니다.
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