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하신년(謹賀新年)'
눈을 뜨고 서재에 앉아 휴대폰을 열어보니
밤새 오간 메시지들이 차고 넘칩니다.
많은 단톡방에서는 '새로운 한 해'를,
가족 단톡방에서도 아이들이 '건강'을,
오랜 친구는 '행복'을 건네옵니다.
분명 어제 새벽과 다르지 않은
오늘 새벽인데 뭔가 분명히 다릅니다.
'아침을 맞는 각오와 다짐'이겠지요.
어제와 같은 자리, 같은 시간, 같은 새벽인데
마음은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있습니다.
새해라는 단어가 삶을 바꿀 리 없고
전혀 새로운 하루를 맞이 할리 없는데
분명한 건 어제보다 더 단단한 느낌이랄까.
올해 무엇을 이루겠다는 거창한 계획보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알차게 살아낼 것인가를
차분하게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조급하지 않게,
남과 비교하지 않게,
할 수 있는 만큼만, 그러나 성실하게.
꼭 비교해야 한다면
흔한 말처럼 '어제의 나'만 겨뤄보려 합니다.
한 해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말처럼 쓰이지만,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진
토정 이지함의 태도에서 비롯된 말.
민생을 위해 헌신한 관리였던 그는
해마다 올해의 운을 봐달라며 찾아오는
백성들에게 '올해는 잘 될 겁니다'라는 말로
위로를 건네고 돌려보냈다고 하지요.
미래를 정확히 내다봐서 가 아니라
불안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 이들에게
그가 건넨 건 '희망'의 씨앗이었을 겁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그 '희망' 때문에
오늘이 다른 새벽과 다른 마음가짐입니다.
철없던 어린 시절의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다짐으로 시작하는 희망.
오늘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내 자리에 다시 앉는 것.
대단하지도 않으면서 실천하기 어려운 것.
이런 사소하고 작은 선택들이 쌓이면
희망은 바람이 아니라 생활이 되지 않을까.
어제 새벽에
'이만하면 충분한 한 해'였다고 썼습니다.
올해가 잘 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낸다면
올 연말에도 '이 정도면 충분한 한 해'였다고
말할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배송하러 나갈 준비를 합니다.
조용히 제 새벽을 시작합니다.
희망을 믿어서가 아니라,
희망이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