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닥이 원래 그래"
제법 규모가 있는 매장들은
대부분 현금 결제를 하지 않습니다.
물건은 먼저 받고, 한 달 동안 매입액을 기준으로
월말에 일괄 결제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하면 ‘후불제’입니다.
이 구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많은 매장들이 사실상 자기 돈으로
장사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한 달 동안 장사해서 번 돈으로
그달의 물건값을 계산하는 방식이니까요.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듭니다.
소비자가 매장에서 외상으로
물건을 살 수 있을까요?
편의점에서는
50원짜리 과자 하나도 카드 결제가 가능한데,
왜 대리점이 납품하는 물건은
당연하다는 듯 월말 결제여야 할까...
문제는 이 '결제 구조'가
각종 갑질의 출발점이 된다는 데 있습니다.
결제 시점이 되면
'판매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결재 금액의 몇 퍼센트를 공제하는 매장도 있습니다.
어떤 곳은 결제 기일을 열흘, 스무날,
심지어 몇 달씩 미루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리점의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본사로부터 물건을 받을 때는
100% 현금 결제입니다.
두부 한 모를 주문하더라도
여신 통장에 1,000원이 있어야
창고에 두부 한 모가 들어오는 구조입니다.
결국 대리점은 현금으로 물건을 사서
외상으로 납품을 해주는 구조인 셈입니다.
한 달 치 매출을 종합해 보면
매장들이 쥐고 있는 금액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거래 매장 중 몇 곳만 결제가 늦어져도
현금 매입 구조의 대리점은
순식간에 버거워집니다.
또 하나 흔한 문제는
이른바 ‘유통기한 갑질’입니다.
유통기한이 며칠 남아 있음에도
'유통기한 확인할 직원이 없다'는 이유로
이틀, 사흘 전에 물건을 반품을 시킵니다.
그 물건은 결국
대리점에서 폐기해야 합니다.
그나마 이틀 전 반품은 양반입니다.
냉동식품처럼 유통기한이 긴 상품은
한두 달 전 반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나는 손해 볼 거 없다'라는 인식에서
나오는 행동일 겁니다.
명절이나 특정 시즌이 되면
매장에서는 '소비자 행사'를 이유로
납품가 인하를 요구합니다.
잘 팔리는 행사 매대를 준다고 하며
물건을 대량으로 받습니다.
문제는 행사가 끝난 뒤입니다.
다른 업체, 다른 상품이 들어와야 한다며
남은 물량을 반품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돌아온 물건들은
대리점의 악성 재고가 됩니다.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
반값 이하로 처분하거나
결국 폐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정을 매장 담당자들이 정말 모를까요?
다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도 요구하는 겁니다.
유통업에서 마법의 문장.
거래는 '신뢰'가 기본입니다.
기본 위에 '서로 존중'이라는 가치가 필요합니다.
부디 내 뒤에 근무할 후배들에게는
원래 그런 부당함이 생활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영하 10도입니다.
새벽 찬 바람을 맞으며 출근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경의를 드립니다.
*에필로그
이 글은 어제 음성 입력으로 초안을 작성해서
새벽에 글을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