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좋아서 계속 하는 일이라면

by 글터지기

지난 2년 동안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써 왔습니다. 요즘은 글을 쓰는 일도 제법 재미있고, 독서를 하는 시간도 제법 기다려집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물음이 따라옵니다. 이게 내 적성에 맞는 일일까?


그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이상하게도 또 하나의 착각이 고개를 듭니다. 마치 내가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고, 오랫동안 이 길을 준비해 온 사람인 것처럼 스스로를 미화하고 포장하는 마음입니다. 지금의 즐거움이 과거의 꿈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처럼, 마치 무엇인가 이룬 것처럼 기억을 재구성해 버리는 일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솔직해지면 답은 분명합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작가를 꿈꿔온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던 즈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군인의 길을 택했습니다. 선택이라기보다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의 결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직업군인 생활을 24년이나 했습니다. 그 안에도 전성기가 있었고, 보람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나는 어릴 적부터 훌륭한 장군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 역시 현재의 만족을 과거의 꿈으로 끼워 맞춘 해석이었습니다.


의료기기 업체에서 일할 때도, 대리점 유통업을 할 때도 비슷했습니다. '생각보다 나한테 맞네.' '이 일, 재미있네.'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들이 제 어린 시절의 꿈이었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습니다.


문득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왜 군 생활이나 글쓰기는 '꿈이었을지도 모른다'라고 포장하면서, 몸을 쓰는 유통업이나 의료기기 일은 '꿈은 아니었다'라고 선을 긋고 있었을까요?


아마도 답은 단순할 겁니다.


저에게는 애초에 거창한 꿈을 꾸고 일을 해 온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군에서도 능력이 부족했던 모습이 나타났을 것이고, 의료기기에서도 마찬가지 였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때그때 다가온 선택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걸어왔을 뿐이라고 자신할 뿐입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공들여 몸을 담그다 보니, 어느 순간 재미가 생겼고, 의미가 생겼습니다.


꿈이 있었기 때문에 오래 한 것이 아니라, 오래 하다 보니 의미가 붙은 것이 아닐까.


지금의 글쓰기 역시 그렇습니다. 취미라고 생각할 때는 한없이 가볍고 즐겁습니다. 읽고 쓰는 시간이 온전히 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것이 ‘일’이 된다면 어떨까 상상해 봅니다. 책임이 생기고, 성과를 내야 하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면 지금의 순수한 즐거움이 그대로 남아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이 재미있는 일을 오래 이어가려면, 끝까지 취미로 남겨두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요. 어쩌면 제가 좋아하는 것들은 '의무'가 되는 순간 빛을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답은 또 거창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일이 직업이 되느냐, 취미로 남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도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서 책상 앞에 앉아 가만가만 한 줄씩 써 내려가는 제 마음일지 모릅니다.


꿈이 있었던 사람이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주어진 길을 성실히 걸어왔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저는 다만 오늘의 즐거움을 과장하지도, 미리 포장하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려 합니다.


꿈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좋아서 계속하는 일이라면,

어쩌면 그 재미있고 설레는 취미가 평생의 꿈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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