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6년 2월 22일(음력),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학자 정약용(호 다산)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75세였습니다.
그는 혼란한 시대 속에서 백성의 삶을
개선할 방법을 고민했던 학자이자 행정가였습니다.
형 정약전, 약종과 함께 학문과 개혁의 길을 걸었지만,
1801년 신유박해로 인해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야 했습니다.
18년의 유배 생활은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사상이 무르익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수백 권에 이르는 저술을 남기며
지방 행정 개혁, 형벌 제도 개선,
국가 운영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공리공담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실천’을 지향했습니다.
탐관오리를 경계하고, 수령의 도리를 강조하며,
억울한 형벌을 바로잡고자 했던
그의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림을 줍니다.
그는 역사의 죄인이 아니라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였습니다.
말년에는 고향 남양주로 돌아와
'여유당'이라 이름 붙인 집에서 학문에 전념했습니다.
그리고 1836년, 조용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정약용은 권력의 중심이 아닌
유배지에서 더 빛났던 인물입니다.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정약용'
*참고 자료 : 최태성 365 한국사 일력
https://namu.wiki/w/%EC%A0%95%EC%95%BD%EC%9A%A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