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2월 21일, 대구에서
국채보상모금을 위한 국민대회가 열렸습니다.
같은 날 제기된 국채보상운동의 취지를 널리 알리고,
본격적인 모금에 나서기 위한 공개 집회였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일본의 강한 통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대한제국에 거액의 차관을 제공했고,
그 결과 국채는 약 1,300만 원에 달했습니다.
이 빚은 단순한 재정 문제가 아니라,
일본이 대한제국의 내정을 간섭하는 명분이 되었습니다.
대구의 상인 '서상돈'은
'담배를 끊어 그 돈으로 국채를 갚자'는 제안을 했고,
이 주장은 신문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전국에 알려졌습니다.
이날 열린 국민대회는 이러한 제안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시민들이 모여 취지를 공유하고,
모금에 동참할 것을 결의했습니다.
상인과 유림, 일반 백성들이 함께 모여
나라의 빚을 국민 스스로 갚겠다는 뜻을 다졌습니다.
국민대회는 단순한 모금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신분과 계층을 넘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의식을 드러낸 집단적 선언이었습니다.
이후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여성들은 패물을 내놓고 학생과 노동자들도
성금을 모으며 참여했습니다.
비록 일본 통감부의 방해와 탄압으로
목표를 완수하지는 못했지만,
1907년 2월 21일 대구에서 열린
국민대회는 민중이 자발적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나섰던
역사적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발췌
https://namu.wiki/w/%EA%B5%AD%EC%B1%84%EB%B3%B4%EC%83%81%EC%9A%B4%EB%8F%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