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하다 ㅋㅋ
2월의 말일입니다. 매월 말일은 요일과 상관없이 재고조사를 해야 합니다. 다른 날보다 퇴근 시간이 훌쩍 늦어집니다. 하필 토요일과 겹치기라도 하면, 괜히 억울한 마음이 한 스푼쯤 얹어집니다. '왜 하필 오늘이 말일이냐'라고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할 일은 해야 하는 게 또 생활이지요.
천근만근이 된 몸을 소파에 잠시 내려두었다가, 만둣국으로 속을 달래고 나니 조금 살 것 같았습니다. 그 길로 '마음지기'와 커피 한잔하러 나왔습니다. 서울에 있는 '마음을 나눈 친구'가 보내준 커피세트 쿠폰 덕분에, 오늘은 소박한 호강을 누립니다.
요즘 마음지기는 시에서 운영하는 바리스타 자격증 과정에 다니고 있습니다. 저녁이면 가방을 챙겨 나가는 뒷모습이 제법 의젓합니다. 저는 퇴근 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이 곧 휴식이니, 매일 같은 공간에 있어도 '함께 시간을 나눈다'는 느낌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갔다 온 사람 둘' 이야기를 쓸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각자 지나온 시간도 있고, 고려해야 할 주변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분명한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연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는 목록이 없다는 점입니다. 하루에 몇 분은 꼭 통화를 해야 한다거나, 기념일마다 이벤트를 준비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의무 같은 것 말입니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생활을 지키며 서로를 응원합니다. 그리고 가끔 이렇게 시간을 내어 마주 앉으면, 격식 없이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오늘도 한참 수다를 떨다가, 어느 순간 각자의 휴대폰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펼쳐놓고 각자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같은 테이블, 다른 화면, 그러나 비슷한 온도. 이 또한 우리 방식의 데이트입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편안하게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건 모두 마음지기의 응원 덕분이었습니다. 말없이 커피를 내려 제 앞에 놓아주고, 출출할 때쯤이면 조각 케이크를 밀어놓습니다. '글 쓴다며?' 한 마디면 충분합니다. 그 말 한 줄이, 사실은 긴 문장보다 더 큰 힘이었습니다.
며칠 전 줌 미팅 발표에서 저는 '소중한 건 곁에 있다'라고 뻔뻔하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가까운 소중함을 충분히 챙기지 못하고 있었다는걸, 오늘 커피 향 속에서 깨닫습니다.
그래서 3월에는 '종이책 퇴고'와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 집중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거창한 이벤트는 없을 겁니다. 풍선도, 촛불도, 깜짝 선물도 없을 겁니다. 대신 시간을 조금 더 쪼개 보려 합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온도로 숨 쉬는 시간을, 조금 더 의식적으로 늘려보려 합니다.
인생의 말일도 언젠가는 찾아올 텐데, 그날 '왜 하필 오늘이냐'라고 억울해하지 않으려면 지금을 잘 써야겠지요. 재고조사처럼 마음도 한 번쯤 들여다보며, 남은 것이 아니라 '남기고 싶은 것'을 챙겨야 할 때입니다.
방금 옆에서 글을 쓰고 있던 마음지기가 물어 옵니다.
"글을 쓰면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어"
내가 대답합니다.
"그걸 써, 마무리로.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싸늘하게 저를 쳐다봅니다. ㅎㅎ
한마디 더 해줘야겠습니다.
"당신만 할 땐 다 그래." 하하하
이제 사정거리에서 좀 떨어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