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
다이어트를 하는 분들이 흔히 하는 말입니다. 저는 그 말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마음에 스트레스가 없고, 즐거움이 넘친다면 무엇을 먹어도 몸이 덜 억울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정도로요.
며칠 전, 흰머리 소년께서 시장에 다녀오신 뒤로 집 안이 북적입니다. 꽈배기 한 봉다리, 만두 세 팩.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먹거리들이 저를 째려봅니다. '속터지기'가 되는 순간입니다.
결국 주말 저녁에는 만둣국을 끓였습니다. 얼른 하나씩 처리(?) 해야 한다는 묘한 강박도 있었으니까요.
"아버지, 꽈배기는 당에 좋지도 않은데 뭐하려고 사 오셨어요? 누가 먹는다고?"
"그건, 만둣집 사장이 어제 팔다가 남은 건데 드셔보라고 주는데 그냥 오냐? 받아 왔지."
이제 거짓말도 수준급이십니다. 하하하
"그냥 준다고 받아오면 어째요? 아버지가 드시려고요?"
"나야 당 때문에 안 먹지."
"그럼 누가 먹냐고요?" ㅋㅋ
"그거야 나야 모르지...."
목소리가 점점 줄어드는 모습에 웃음이 납니다. 만둣국을 다 먹고 나니, 수제 식혜가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달콤한 향이 솔솔 납니다.
"아버지, 식혜도 당에 안 좋은 거 아니에요?"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건 괜찮다!!"
이쯤 되면 기준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건 당에 안 좋고, 어떤 건 괜찮고. 들쭉날쭉한 건강 철학입니다. 그러다 흰머리 소년께서 한 수 더 뜨십니다.
"지난번 캐나다 가서 맛있는 거 실컷 먹고 왔는데 혈당 수치도 낮고 괜찮더라. 니 동생이 그러는데, 맛있게 먹으면 당이 제로래."
이쯤 되면 과학의 영역을 벗어났습니다. 철학도 아니고, 거의 신앙 고백에 가깝습니다.
혼구녕을 내야 할 사람은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진 동생인지, 아니면 그 말을 굳게 믿고 싶은 흰머리 소년인지 잠시 헷갈립니다. 문제는, 그렇게 선언을 해놓고는 식혜를 냉큼 한 잔 따라 들이키시며 외치시는 겁니다.
"마이따~~"
그 천진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잔소리를 이어가려던 마음이 스르르 풀립니다. 그래, 드시고 싶은 거 조금 드시고 대신 운동을 한 번 더 하시면 되지. 인생이 매번 계산기처럼 딱 맞아떨어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함께 앉아 웃고, 투덜대고, 서로 눈치도 보면서 결국은 서로의 건강을 챙기는 마음.
그 마음이 쌓일수록 집 안의 공기는 조금 더 부드러워집니다.
행복의 수치는 차곡차곡 올라가고, 흰머리 소년 말씀처럼 혈당 기계로는 도무지 측정되지 않는 무언가가 우리 식탁 위를 따뜻하게 덮어줍니다.
어쩌면 '제로'가 되는 것은 당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서운함과 걱정의 무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또 한 번 주문을 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