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합니다. 흰머리 소년 덕분에...

이사와 뽕짝의 상관 관계

by 글터지기

공원에서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할 때 종종 불편하게 느끼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르신들께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운동을 하시는 모습입니다. 방향이 같고 속도까지 비슷하면 어르신이 듣는 뽕짝을 한참 동안 함께 들으며 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살짝 난감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늘 속으로 이런 바람을 품곤 했습니다. 흰머리 소년께서는 제발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이었습니다. 흰머리 소년께서는 역시 어르신답게 티셔츠 왼쪽 주머니에 휴대폰을 꽂고 운동을 하시며 뽕짝을 들으십니다. 엘리베이터에서도, 현관 복도에서도 그 음악은 끊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음악이 집에서도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흰머리 소년 방에서는 TV 스포츠 중계가 크게 울리고, 그 와중에도 휴대폰에서는 뽕짝이 흘러나옵니다. 어느 날 피곤해서 방에서 잠깐 눈을 붙이려 하면 TV 소리와 뽕짝 소리가 겹쳐 머리가 어수선해지곤 합니다.


그래서 가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냅니다.

"아버지, 둘 중 하나만 끄시면 안 될까요?"

그러면 흰머리 소년께서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뽕짝을 끄십니다.


저는 블로그를 쓰기 시작하면서 저만의 서재를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년 전쯤 거실 한쪽에 책상을 두고 작은 서재를 마련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퇴근 후에는 그 자리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제게는 꽤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거실 서재는 제게 잘 맞는 공간이었습니다.


문제가 생긴 것은 안마 의자가 집에 들어오면서부터였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책상 바로 뒤에 그 안마 의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흰머리 소년께서는 운동을 다녀오시면 샤워를 하신 뒤 꼭 안마 의자에 앉으십니다. 그리고 어느새 잠이 드십니다. 그런데 그때도 늘 뽕짝이 흘러나옵니다.


안마 의자의 윙윙거리는 소리와 뽕짝이 겹치는 순간, 글을 쓰거나 책을 읽던 제 집중력은 금세 흐트러집니다. 그렇다고 '아버지, 제가 글 쓰니까 음악 좀 끄세요.'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좋아하시는 음악을 아들 때문에 끄시라고 하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작은 스트레스가 조금씩 쌓여 왔습니다.

결국 큰 결심을 했습니다. 이사를 가기로 말입니다.

서재를 작은방으로 옮기는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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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간단하지만 해야 할 일은 꽤 많습니다. 먼저 작은방에 있던 책장과 책들을 거실로 옮겨야 하고, 건조기와 각종 비품도 자리를 바꿔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PC와 책상 등 서재 물품을 작은방으로 다시 들여놓아야 합니다. 인터넷 선 연결부터 책장 배치까지 모두 새로 정리해야 하는 일입니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마음만 먹고 두어 달을 미루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미루다 가는 영영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천천히 시작해 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인터넷 업체에 인터넷 선 조정을 신청했고, 그 일정에 맞춰 책장 배치도 다시 해보려 합니다.


아무래도 조용한 서재를 갖기 위해서는 집 안에서 작은 이사 한 번쯤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조금 억울한 마음도 듭니다. 조용히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은 저인데, 왜 집 구조를 바꾸고 인터넷 선을 옮기고 책장을 나르고 난리를 치는 것도 전부 저인지 말입니다.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흰머리 소년의 뽕짝을 끄게 하는 것보다는 제가 서재를 옮기는 편이 훨씬 현실적인 해결책이니까요. ㅋㅋ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문제와, 내 의지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가족과 평화를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가구 배치를 바꾸는 것'이라는 게 오늘 사색의 결론입니다. 하하하


"아버지! 뽕짝, 신나게 들으시자고요!!! 하하하"

아아... 일주일은 고생하겠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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