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이사
드디어 흰머리 소년의 '뽕짝 테러'에서 벗어났습니다. 하하하.
꽤 오랫동안 별러오던 일입니다.
거실에 작은 서재를 두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생활을 해왔는데, 집에 안마의자가 들어온 이후 상황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안마의자에 몸을 맡기신 흰머리 소년께서 뽕짝 메들리를 틀어놓기 시작하신 겁니다.
안마의자와 뽕짝, 그리고 거실 서재.
이 조합은 생각보다 강력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오늘 큰마음을 먹었습니다.
작은방에 있던 책장을 거실로 꺼내고, 거실에 있던 서재를 방으로 옮기기로 한 겁니다.
생각보다 꽤 큰 작업이었습니다. 책장을 비우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책을 한 권 한 권 꺼내 거실에 쌓아 놓고, 묵직한 책장을 끙끙거리며 끌어냈습니다. 그동안 이사를 다니며 책을 많이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막상 꺼내 보니 여전히 꽤 많은 양이 남아 있었습니다. 거기에 최근 주문한 책들까지 더해지니 책 더미는 쉽게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음지기 책상과 제 책상도 함께 방으로 옮겼습니다.
유선 인터넷을 새로 설치하려 했지만 출장비에 배선 공사까지 필요하다고 해서, 결국 무선 기가 와이파이 랜카드로 대신 연결했습니다. 이런저런 장비를 설치하고 선을 정리하느라 방 안은 한동안 공사판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 복잡하고 난잡한 작업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흰머리 소년께서는 안마의자에 몸을 맡긴 채 시원하게 뽕짝을 듣고 계셨습니다.
"어제 안세영 경기 본다고 밤을 꼬박 샜다. 1시 반에 방송해 준다더니 새벽 세 시 반에 나오더라. 에이, 나쁜 놈들…"
말씀을 마치시고는 안마의자와 한 몸이 된 채 푹 잠이 드셨습니다.
잠에서 깨신 뒤 달라진 거실을 보시더니 눈이 동그래지셨습니다.
"아버지, 이제 뽕짝 마음대로 들으셔도 됩니다."
"그래? 그거 아주 잘했다."
그 말씀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가셔서는 배드민턴 경기 재방송을 틀어놓으셨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경기 중계가 나오고 있는데, 가슴 주머니에 꽂아둔 휴대폰에서는 여전히 뽕짝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둘 중 하나는 끄시는 게 어떠세요?"
"난 괜찮다."
"제가 안 괜찮아요. ㅋㅋㅋㅋ"
역시 흰머리 소년답습니다.
덕분에 거실은 조용해졌고, 방 안에는 새로 만든 작은 서재가 자리 잡았습니다. 마음지기 책상도 제자리를 찾았고, 제 책상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공간과 책을 읽는 공간으로 나누었습니다.
어느 작가가 말했다지요. 가장 현명한 인테리어는 '빈 공간'이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읽고 있는 책 몇 권만 책상 위에 두고 나머지는 책장에 꽂아두기로 했습니다. 공간이 조금 비워지니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생각해 보면 오늘 하루 종일 한 일은 그저 가구 몇 개를 옮긴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집 안의 풍경도 조금 달라졌고, 우리 가족의 하루도 조금 더 편안해졌습니다.
거실에서는 뽕짝이 마음껏 흐르고, 작은방에서는 조용히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집.
어쩌면 함께 산다는 것은 이런 소소한 일거리가 가득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책을 쌓을 곳이 없으니
이제, 회전 책장을 하나 사야겠습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