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건 대추 두 팩
"아버지, 이건 뭘 두 팩씩이나 사셨어요?"
"어, 그거? 한 팩 사니까 한 팩은 덤으로 주더라."
퇴근해 집에 들어와 보니 동그란 식탁 위에 귤 한 봉지와 마른 대추 두 팩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이제 귤 끝물이다' 하시던 분이 또 한 봉지를 사 오신 겁니다.
아, 또 뭔가 사 오셨구나. 이젠 어처구니가 없지도 않습니다.
요즘 시절에 마른 대추가 얼마나 비싼데, 한 팩을 사면 한 팩을 거저 주는 가게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도 모른 척합니다.
아마 제가 일찍 퇴근한다는 걸 모르고 사 오셨다가, '아들 오기 전에 치워야지' 하고 식탁 위에 잠깐 올려두셨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모든 근무를 마치고 들어온 아들놈에게 딱 걸린 겁니다.
잠시 후 식사를 하고 계시던 아버지께 슬쩍 물어봤습니다.
"요즘 저 대추 얼마씩 해요?"
"비싸. 저거 요즘 한 팩에 만 원씩 이상 해."
"그렇게 비싼데도 사 오셨어요?"
"요 앞에 나가 보니까 이번에 싸게 팔더라. 한 팩에 오천 원 하더라고."
"그럼 두 팩 사고 만 원 내셨겠네요?"
"그래. 만 원에 두 팩이면 싸게 주고 샀지."
푸하하. 잠깐 웃음을 참고 있다가 한마디 던졌습니다.
"아까는 한 팩 사니까 한 팩은 거저 준다면서요?"
역시 흰머리 소년은 식사를 하다 말고 잠시 말이 끊기고, 식탁 위에 잠깐 정적이 흐릅니다.
그러고는 본인도 어이가 없는지 씨익 웃으십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대추를 싸게 샀다는 이야기를 은근히 자랑하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핑계도 두 개쯤 준비하신 모양입니다.
'싸게 샀다'라는 이야기 하나, '하나는 덤'이라는 이야기 하나.
그런데 막상 들키고 보니 어느 쪽 핑계를 먼저 대야 할지 본인도 헷갈리신 듯합니다.
저는 그냥 웃으며 넘어갑니다. 마른 대추가 건강에 안 좋을 리도 없고, 마침 마음지기가 날이 풀렸다며 저 먹으라고 끓이는 육모초에 대추 몇 개를 넣어 주겠다고 꺼내 드는 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해서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집 식탁 위에는 늘 이런 것들이 하나씩 올라옵니다.
귤 한 봉지, 대추 두 팩, 그리고 들키면 씨익 웃어버리는 흰머리 소년의 마음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래서 흰머리 소년의 거짓말에도 색깔이 있다면 '투명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막 퇴근해서 들어와 보니, 태연자약하게 안마의자에 누워 뽕짝 메들리를 듣고 계십니다.
오늘은 식탁 위가 비어 있는 걸 보니, 오늘은 진짜 '운동만' 하고 오신 모양입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