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님이 주고 간 종량제 봉투를 확인하며

국가 보훈대상자

by 글터지기

저도 참 어지간히 아둔한 놈입니다.


지난 금요일, 조금 일찍 퇴근해 집에 있었습니다. 종이책 원고 퇴고를 하느라 거실 책상에 앉아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찾아올 사람이 없어 이상하다 생각하며 문을 열었더니 동네 통장님이 서 계셨습니다.


통장님은 별다른 설명도 없이 제가 국가 유공자라며 쓰레기 종량제 봉투 두 묶음을 제게 건네셨습니다.

"이거 지난번에도 우리 집에 가져다주셨는데, 제가 대상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렸지만 통장님이 들고 계신 명단에는 분명 제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옆에는 오래전에 사용하던 휴대전화 번호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군 생활 시절 쓰던 번호였습니다.


통장님은 혹시 모르니 시청에 확인해 보겠다며 돌아가셨습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요. 통장님에게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군 생활 오래 하셔서 국가유공자로 등록돼 있으신 거 맞다고 합니다."


순간 잠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군 장기 복무자에게 여러 혜택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국가 보훈 대상자, 즉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날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일하면서 틈틈이 국가보훈처에 전화를 걸어 확인했습니다. 정말로 제 이름이 등록되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전역할 당시 저는 별도의 전역 신고 절차를 밟지 않았습니다. 인사 담당자는 일정이 겹친다며 전역증을 우편으로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역증은 끝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새로운 직장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전역증 하나 받지 못한 일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아쉽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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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그때 누군가 한마디만 해주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역할 때 보훈처에 신고해야 한다는 말 한마디였다면, 지난 8년 동안 받을 수 있었던 혜택을 놓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난 시간을 아쉽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그동안 모르고 살아온 저 자신이 더 어이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제 청춘 24년을 군 조직에서 보낸 일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제 나름대로 신명나게 일했고, 맡은 자리에서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 길의 끝에서 이런 작은 보상이 따라온다면 그것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혜택을 개인적인 이득으로 계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게 더 크게 남아 있는 것은 전쟁터 같던 훈련 현장과, 그곳에서 함께 땀 흘리던 전우들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선 부대의 상황실에서는 누군가가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을 것입니다. 훈련장을 뛰어다니는 후배들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늘 평온해 보이지만, 그 평온 뒤에는 늘 누군가의 긴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이 전역하게 될 때, 자신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제때 알고 챙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처럼 뒤늦게 알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국가 보훈대상자'라는 이름보다 제가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름은 한때 군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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