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정신과』, 윤우상
오디오북을 들으며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귀로 읽는 책'에 대한 기준도 생겼습니다. 이야기의 전개 속도와 목소리의 어울림, 장면이 가지는 상상의 밀도까지도 어느 순간부터는 무의식적으로 가늠하게 됩니다.
윌라 오디오북에서 '추천'으로 듣기 시작한
처음에는 그저 피식피식 웃음이 나고, 유쾌하게 환자들과의 경험담이 흘러나왔습니다. 내용이 좋고 나쁨을 따질 겨를도 없이, 그저 끝까지 따라가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이 책을 3일에 걸쳐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들었다'기보다 '일하는 시간 내내 함께했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배송을 하며 차 안에서, 물건을 내리는 짧은 틈 사이에서 끊어 들었다가 다시 이어 들으면서도 이야기의 흐름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짧은 공백들이 다음 이야기를 더 궁금하게 만들었습니다.
제목이 주는 첫인상은 낯섦이었습니다.
'정신과'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와 '명랑한'이라는 형용사의 조합이 쉽게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책을 조금만 듣고 나면 곧 알게 됩니다. 이 책이 말하는 '명랑함'은 가벼움이 아니라,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끝내 붙잡게 되는 '희망'에 가깝다는 것을.
책 속에는 다양한 환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어떤 이는 삶의 끝자락에서 겨우 손을 내밀고 있었고, 어떤 이는 이미 무너진 일상을 가까스로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은 단순히 비극으로만 흐르지 않습니다. 곳곳에서 작게 웃음이 스며 나옵니다. 그 웃음은 상황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신의 상처를 농담처럼 꺼내는 장면에서는 잠시 웃음이 나오다가도, '자살한 아들을 보낸 어머니의 심리극'에서는 끝내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어머니의 한을 꺼내고, 함께 참여했던 '아들 역할'의 젊은이의 사연까지. 때로는 이렇게 지나치게 현실적인 이야기가 있을 수 있을까.
내 주변의 누군가를 떠올리고, 때로 제 자신의 모습과 겹쳐지기도 했습니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 있었습니다. 정신과라는 공간이 더 이상 특정한 사람들만의 장소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 어쩌면 정신적 문제가 있는 우리 모두는 비슷한 삶을 사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그 공간을 과장하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따뜻하게 포장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풀어냈습니다.
저는 일하다 말고 잠시 멈춰 유쾌하게 웃다가도, 사연이 깊어질 때는 눈물을 감추느라 애써 이를 악물었습니다. 감정을 강하게 자극하는 문장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담담한 문장 속에 담긴 진심이 가슴에 확 와서 꽂혔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특별한 사람'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었습니다. 판단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그저 그 사람의 속도에 함께 가는 마음. 그 시선이 책 전체를 감싸고 있어서인지, 듣는 내내 묘한 안도감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제 이야기도 그렇게 들어줄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오디오북이라는 형식 역시 이 책의 감정을 더욱 깊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디오북은 특성상 글을 읽어주시는 '성우'가 누구냐에 따라서도 감정이 달라집니다.
이 오디오북을 읽어주신 리더, '정승윤' 성우 님의 탁월한 음성 덕분에 글로 읽었다면 무심코 지나쳤을지도 모를 숨의 간격, 말끝의 미묘한 떨림, 그리고 짧은 침묵들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윌라 오디오북에 리뷰가 110여 개가 달려 있을 정도의 공감과 응원이 함께하는 책.
3일이라는 시간 동안 이 책은 제 마음에 '감동'으로 조용히 스며들었습니다. 반복되는 배송 동선 속에서도, 매장과 매장을 오가는 사이에서도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제가 만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져 있음을 느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 너머에 각자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그 단순하지만 중요한 시선이 이 책이 남긴 변화였습니다.
『명랑한 정신과』는 치유를 특별한 문장으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함께 버텨내는 삶의 태도를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삶이 당장 나아지지 않더라도, 오늘 하루를 조금 덜 힘들게 건너갈 수 있도록 곁에 머물러 주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마 저는 이 책을 종이책으로 다시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온전히, 그리고 조용히 다시 그 감동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삶에 지친 모든 분들께, 이 책을 권해드립니다.
분명, 위로와 감동이 함께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