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책방』을 가다
살면서 '독서 모임'이나 '사색의 시간' 같은 모임을 가까이에서 접해 본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 당근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유의 정원'이라는 모임을 발견했을 때, 묘한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충주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커뮤니티가 만들어진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참여 인원도 많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 마음을 끌었습니다. 잘 다듬어진 모임이 아니라, 이제 막 숨을 틔우기 시작한 공간이라는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제, 그 첫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모임 장소는 『백인책방』이라는 '공유' 책방이었습니다.
이름부터 낯설고, 공간의 성격도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충주에서 7년을 지내며 매일 같은 길을 오가고, 같은 일상을 반복해 왔지만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습니다.
알고 보니 오픈한 지 두 달 남짓한, 아주 새로운 공간이었습니다.
『백인책방』이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했습니다. 100명의 점주가 함께 만드는 책방이라는 뜻, 그리고 ‘백성이 만인'을 의미하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 실제로 그곳은 각자의 책과 취향,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은 세계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어제 모임에 참여한 분들은 모두 일곱 명.
나이도, 성별도, 살아온 배경도 모두 달랐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읽고,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첫 모임이었던 만큼 정해진 주제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임을 이끄는 '사유샘'님은 철학을 전공한 교육자답게 '질문하는 능력'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건네주셨습니다.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라는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가장 젊은 참여자는 '문해력과 독서의 관계'를 이야기했습니다. 단순히 글을 읽는 능력을 넘어, 세상을 이해하는 힘으로서의 독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가장 연장자이신 선생님은 철강회사를 은퇴하신 분이었지만, 그 말씀 속에는 오랜 시간 쌓인 사유의 깊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직업이나 나이가 사람의 깊이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었습니다.
각자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그 공간은 어느새 단순한 '모임 장소'가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건네는 자리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매주 수요일 저녁, 각자가 하나의 '질문'을 가져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특정한 책이나 독서에만 국한되지 않고, 각자의 경험과 배움을 바탕으로 생각을 나누자는 데 모두가 자연스럽게 동의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충주에 정착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 중 하나가 이런 시간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생각을 듣고, 내 생각을 조심스럽게 꺼내 놓을 수 있는 자리. 그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공간이 없다는 사실이 늘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모임에 합류하게 된 일이, 우연이라기보다는 조금 늦게 도착한 인연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한 번의 모임으로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모임이든 시간 속에서 다듬어지고, 사람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어제 저는 그 시작점에 발을 디뎠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 시작이 생각보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울림을 남겼습니다.
사무실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백인책방』은 이제 제 하루의 끝자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공간이 될 것 같습니다. 자전거로 퇴근하는 길에 잠시 들러 차 한 잔을 마시고, 몇 장의 책을 넘기고, 누군가의 질문을 떠올리는 시간.
어쩌면 일상 속에서 삶은 이렇게 조금씩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빠르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도 잠시 나만의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자리를 하나 만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주에서의 시간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