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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장소, 같은 시간, 그러나 다른 느낌

뒷모습이 부끄럽지 않기를

by 글터지기

며칠 전 저녁 식사를 마치고

흰머리 소년과 한참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 집 저승사자(딸)이 가족 단톡방에

지난주에 만났을 때 찍은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그날, 아이들과 만난 한적한 카페.

저녁노을이 너무도 곱게 물들어

딸아이와 함께 뜰로 나가 사진을 몇 장 남겼습니다.


저는 노을에 매료되어 연신 셔터를 눌렀고,

딸아이는 제 사진 실력이 못마땅했는지

“아빠, 사진 그렇게 찍는 거 아니야~

구도가 이상하잖아~” 하며 핀잔을 날렸습니다.


그래도 그날, 멋진(?) 사진 한 장은 건졌습니다.


언젠가 이 날을 다시 꺼내보게 된다면

저녁노을이 가만히 내려앉던

그 카페의 뜰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요.

그래서 사진으로 그 순간을 조용히 잡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흘러,

그날의 기억이 흐릿해질 즈음

딸아이가 보낸 사진 한 장이 도착했습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

하지만 아이의 사진은 풍경이 아닌

저를 담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 장면을 보며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더니.


딸아이는 문득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이 사진을 담았을까.


아빠도 이제 나이가 드는구나 싶었을까,

노을 사진을 신이 나서 찍고 있는 아빠의

뒷모습이 즐거워 보였을까?


굳이 '어떤 마음이 들었어?' 하고 묻지 않았습니다.

사진 한 장에 모든 마음이 다 담겨 있으니까요.


말보다 진한 마음이,

노을보다 따뜻한 시선이

그 조용한 사진 한 장에 고요히 담겼습니다.


어쩌면, 그날의 노을보다 더 오래

제 마음에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제 뒷모습을 보면서 다짐합니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뒷모습을 보이지 않게,

'아빠만 잘 살면 돼'라는 말에 어울리게,

하루하루를 살아야겠다고요.


모두, 조금 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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