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보안 거버넌스의 구체적 작전 계획
지난 칼럼에서는 AI 거버넌스를 '일반 AI 거버넌스'와 'AI 보안 거버넌스'라는 두 개의 지휘 본부로 인식해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그중 실전 지휘 본부인 'AI 보안 거버넌스'를 통해 실제 전장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작전 계획을 논하고자 합니다.
성공적인 작전은 단 하나의 뛰어난 무기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숙련된 병사(사람), 효율적인 작전 절차(프로세스), 그리고 강력한 무기(기술)가 삼위일체를 이룰 때 비로소 승리를 담보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AI 보안 거버넌스 역시 '사람, 프로세스, 기술'이라는 3대 요소가 '3대 전선(Three Fronts)'이라는 입체적인 전장에서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하는지에 그 성패가 달려있습니다.
첫 번째 전선은 우리 조직의 핵심 지적 재산인 AI 모델과 데이터를 외부의 직접적인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AI 자산 방어'입니다. 주요 위협으로는 AI 모델을 훔치거나(Model Theft), 오염된 데이터를 주입해 모델을 바보로 만드는(Model Poisoning) 등 AI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거나 무력화하려는 모든 시도입니다. 이 전선에서 거버넌스는 요새의 성벽을 쌓고, 해자를 파며, 방어 무기를 배치하는 '축성술(築城術)'과 같습니다.
여기에서 사람의 역할은 AI 보안 아키텍트와 MLOps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들은 단순히 외부의 솔루션을 도입하는 것을 넘어, 우리 조직의 AI 모델이 가진 고유한 취약점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방어 전략을 설계해야 합니다. 프로세스 측면에서는, AI 모델을 개발하는 초기 단계부터 보안 위협을 식별하고 대응 방안을 설계에 반영하는 '보안 내재 설계(Secure by Design)' 원칙이 개발 생명주기(SDLC)에 완전히 통합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술 요소로서, AI-SPM(Security Posture Management)과 같은 솔루션은 공격 경로 예측과 함께 AI 모델 또는 데이터 저장소의 취약점 분석, API의 불필요한 개방 등을 평가함으로써 마치 요새의 외벽과 성문의 견고함을 점검하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모델 자체의 논리를 파고드는 적대적 공격까지 방어할 수 있는, 더욱 심화된 기술로 발전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전선은 임직원들의 AI 활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보안 위험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가장 복잡한 전장입니다. 바로 임직원들의 'AI 활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보안 위험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일입니다. 이는 요새 바깥에 형성된 거대한 '활용의 도시'를 무질서와 위험으로부터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즉, 이 도시의 시민들(직원)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시 당국(보안팀)의 허가 없이 외부의 자재(외부 LLM)를 들여와 '무허가 건축물(섀도우 AI)'을 짓습니다. 이 건물들은 도시의 핵심 자원(내부 데이터)을 무단으로 끌어다 쓰며 데이터 유출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합법적으로 지어진 건물 내부에서 '불법 용도 변경(내부 AI 오용)'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허가된 AI를 교묘하게 활용하여 자신의 접근 권한을 넘어서는 정보를 빼내는 것입니다. 이 전선에서 보안팀은 도시의 질서와 안전을 책임지는 '도시 계획자 겸 건축 감독관'이 되어야 합니다. 도시 전역의 건축 현황(AI 자산 및 활용 현황)을 파악하고, 위험한 무허가 건물은 없는지 순찰하며, 합법적인 건물이라도 내부에서 위험한 행위가 벌어지지는 않는지 감시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람 요소는 바로 조직의 모든 구성원입니다. 보안팀은 이들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AI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는 '조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정기적인 교육과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여 조직 전체의 'AI 보안 리터러시'를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프로세스 측면에서는, 외부 AI 서비스 도입 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보안성 검토 절차와 데이터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명확한 정책 수립이 필수적입니다. 기술적으로는, 현재 시장의 AI-SPM 솔루션들이 '섀도우 AI'를 탐지하고 가시성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내부 AI 시스템의 사용자 행위 패턴을 분석하여, 권한을 넘어서는 정보 획득 시도와 같은 미묘한 오용 행위까지 탐지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세 번째 전선은 보안팀이 사용하는 AI 기반 보안 시스템의 신뢰성과 성능을 보장하는, 우리 스스로를 향한 거버넌스입니다. 이는 우리가 의지하는 '신뢰의 망루'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끊임없이 검증하는 일입니다. 주요 위협으로는 망루의 파수꾼(AI 위협 탐지 모델)이 특정 종류의 위협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갖게 되거나(Bias), 중요한 침입 신호를 놓치는(False Negative) 상황입니다. 혹은 자동화된 방어 포탑(AI 기반 자동 대응 시스템)이 아군을 적으로 오인하여 공격하는 치명적인 오작동의 위험도 존재합니다. 이 전선에서 거버넌스는 파수꾼의 시력과 판단력을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자동화 무기가 오작동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며, 모든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기록하고 설명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무기 체계 관리 감독관'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우리의 AI 레이더와 포탑이 정말 신뢰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증명해야 합니다.
이 전선에서 사람의 역할은 보안 분석가와 데이터 과학자에게 주어집니다. 이들은 AI가 제시하는 위협 분석 결과를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판단의 근거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역량을 갖추어야 합니다. 프로세스 관점에서는, AI 보안 도구를 도입하기 전에 그 성능과 편향성을 검증할 수 있는 객관적인 평가 기준(PoC)을 수립하고, 운영 중에도 주기적으로 모델의 성능을 감사하고 재학습시키는 절차를 마련해야 합니다. 기술적으로는, 이 영역이 아직 시장의 미개척지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미래에는 AI 보안 도구의 편향성과 설명 가능성을 제3자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검증해주는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 솔루션이 반드시 등장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이버보안 AI 거버넌스가 단일한 방어선이 아닌, 요새, 도시, 망루라는 세 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수행되는 입체적인 작전임을 확인했습니다. 요새만 튼튼히 지킨다고 해서 도시 내부의 무질서가 해결되지 않으며, 도시의 무질서를 틈타 망루의 파수꾼이 매수되거나 적이 아군으로 위장하고 망루에 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통제되지 않는 AI 활용(제2전선)을 통해 발생한 보안 구멍이 결국 우리가 가장 신뢰해야 할 AI 보안 시스템(제3전선)의 눈과 귀를 멀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AI 보안 거버넌스는 어느 한 요소에 치우쳐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AI-SPM이라는 강력한 기술이 있어도, 이를 운영할 사람과 체계적인 프로세스가 없다면 무용지물입니다. 훌륭한 정책과 전문가가 있어도, 전장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기술적 가시성이 없다면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AI 시대에 CISO의 역할은 더 이상 기술적 방어 책임자에 머물 수 없습니다. 기술의 요새, 활용의 도시, 신뢰의 망루라는 세 개의 전선을 모두 지휘하며, 기술과 비즈니스, 법률과 윤리를 넘나드는 복합적인 AI 리스크를 총괄하는 ‘최고 전략가'로 진화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직책의 변화가 아닙니다. AI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조직의 생존과 성장의 키를 쥔 'AI 리스크 전략가'로 거듭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CISO에게 요구하는 진정한 소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