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덕] '인적 지속가능성'과 인간중심보안

ESG 한계 극복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

by 김정덕

최근 글로벌 기업 환경의 최대 화두였던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명확한 한계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한때 지속가능경영의 대명사로 각광받았던 ESG는 점차 개념의 모호성, 실질 성과에 대한 논란, 정치·사회적 양극화와 같은 구조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ESG 정보 공개 및 보고의 규제(예: 2025년 EU CSRD(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가 강화되며 투명성 요구가 높아지고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실질적 변화’보다 ‘형식적 대응’이 만연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주요 선진국에서는 ESG가 특정 이념 혹은 정책 도구로 변질되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S&P500 등 글로벌 대기업 역시 실적 발표에서 ESG 언급을 줄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투자자들도 ESG 펀드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며, ‘그린워싱(Greenwashing: 녹색 위장)’ 논란이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그린워싱은 환경에 책임을 다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행위를 일컫는 신조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인적 지속가능성(Human Sustainability)’입니다. 2023년도 글로벌 인적 자본 동향 보고서는 인적 지속가능성을 ‘조직의 장기적 가치 창출을 위해 직원의 건강, 웰빙, 역량, 자기 주도성을 체계적으로 강화하는 전략’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인적 지속가능성은 기존 인적자원(휴먼 리소스) 관리의 효율성을 뛰어넘어, “사람을 위한 경영”을 기업 전략의 중심에 놓자는 요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인적 지속가능성은 ESG 프레임이 빠뜨리기 쉬운 ‘사람 중심의 변화(웰빙·역량·정체성·참여 등)’를 보다 직접적·구조적으로 지향하며, 일부에서는 ‘사람이 곧 비즈니스 경쟁력’이라는 미래형 패러다임으로 평가합니다. 인적 지속가능성의 실제 적용은 단기적으로 비용적 부담과 비재무적 성과의 측정의 어려움 등 여러 이슈들을 동반합니다. 일시적 복지나 이벤트로 그치면 그 효과는 미미하며, 조직 전체의 문화와 운영체계에 내재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주체적·창의적인 인재 확보와 몰입, 심리적 안정 및 신뢰 기반의 조직을 구축해야만 기업은 진정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인적 지속가능성’은 규제 준수를 위한 ESG의 형식적 프레임을 보완하거나 진화시킬 현실적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ESG가 앞으로도 글로벌 규제와 사회적 압력 하에 일정 역할을 유지하겠지만, 진정한 지속가능경영의 미래는 ‘누구를 위한 지속가능성인가?’라는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는 데 있습니다. 이제는 ‘하지 말아야 할 것(Do less harm)’이 아니라 ‘해야 할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것(Do more good)’이 조직 전략의 중심에 자리 잡아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보안에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인간중심보안(People-Centric Security)’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원력(Resilience), 자율적 책임, 지속적 역량 개발 등 인적 지속가능성의 요소는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사이버보안, 조직 리스크 관리에서 필수적 선결 조건입니다. 심리적·정서적 안녕과 주체적 참여가 뒷받침되어야만, 기술적 보안 대책이 실제 현장에서 실질적 효과와 지속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인적 지속가능성’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기업과 사회 모두의 진정한 번영을 위한 핵심 전략이 될 것입니다. 인간중심보안의 성공 역시 구성원 각자의 주체적 역량, 참여적 문화, 장기적 복원력에 달려 있으며, 인적 지속 가능성과의 접목이야말로 진정한 ‘혁신적 보안 문화’를 만드는 길임을 시사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덕] 중소기업과 인간중심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