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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민웅 May 07. 2020

은지 - 고래(feat. 김한결)

낭만적 사랑이라는 신화, 그리고 성장


은지 - 고래(feat. 김한결)




사랑에 아파본 적 있나요
사랑이 두려워지는 그런 순간
아주 큰 고래를 만나
깊고 까만 눈동자에 풍덩 빠져 버렸네





많은 사람이 사랑에 상처받고, 사랑이 두려워지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에 빠질 때 상대에게 자신의 이상을 투영하고, 그 이상이 깨지는 순간 많은 것이 어긋남을 알게 됩니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에서 로맨틱한 사랑이라는 환상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실 로맨틱한 사랑은 역사가 그리 깊지 않습니다. 낭만주의가 유행하기 이전 연애결혼은 그리 흔한 게 아니었지만, 어느새 우리는 로맨틱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 드라마, 소설 속에서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나의 이상을 상대에게 투영하면서 생기는 '사랑에 빠지는' 느낌을 진짜 사랑이라고 믿는 우리가, 시간이 지나면 상처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타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옆에 있었으면 할 때에 없을 수도 있고, 옆에 없었으면 할 때 옆에서 쉬지 않고 떠들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적당히 멋지고, 적당히 똑똑하고,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재미있는 사람을 원해요. 이게 큰 욕심인가요?" 하지만, 대체 '적당히' 가 정확히 어느 정도를 이야기하는 걸까요? '적당히' 가 어느 정도인지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없으면, '적당히' 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정도'라는 또 다른 이상적인 기준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연극이 끝나고 드러난 서로 다른 기준 때문에 상처를 주고 받은 후엔, 사랑이 두려워지기 시작합니다. 사랑의 끝은 필연적으로 상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세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1. 또다른 이상적인 사랑을 찾아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하거나, 2. 사랑이 두려워 마음을 닫아 버리거나, 3. 자신의 이상을 떠나보내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고래>에서 사랑에 상처받은 화자는 바다에서 고래를 만나고, 고래는 깊고 까만 눈동자로 화자를 바라봅니다. 여기서 고래는 내가 찾아 나선 존재가 아닙니다. 고래는 그냥 거기에 있었습니다. 고래는 나를 바라볼 뿐입니다. 고래와 나는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화자는 고래가 주는 따뜻함을 느낍니다.


화자가 고래를 볼 수 있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고래는 이상을 쫓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고래를 보기 전에는 반드시 자신의 이상이라는, 자신의 문제를 마주해야만 합니다. 은지의 2018년 싱글 <이별> 에서, 화자는 사랑이 상처로 끝났지만 상대를 탓하지 않고 '더 잘해줄걸, 내가' 라고 하며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습니다.




은지 - 이별 (Feat. 연희)




정신과 의사 스캇 펙은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문제란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부딪쳐서 해결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영혼의 성장과 발전에 영원히 장애가 된다.' 고 했습니다. <고래>에서 화자가 고래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의 아픈 경험 이후에 상대를 탓하기보다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마주하고 이상을 떠나보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고 책임지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매일 도피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문제를 끌어안고 성장을 이뤄낸 덕에 그는 고래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처를 주고받던 사람들과는 달리, 고래는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계속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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