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윤회사상? 니체의 영원회귀? 돌고 돌아 내 인생 다시 사는 드라마
이번 드라마의 주인공은 콘도 아사미 33세. 동네 절친 둘과 만나 대차게 놀고 편의점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한 후 귀가하던 길에 트럭에 치여 사망한다.
사후세계는 새하얀 공간에 뜬금없이 동사무소에 있을 법한 접수 데스크 하나가 놓여있고 한 명의 접수원이 공무원 마냥 무미건조하게 일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이 접수된 걸 친절한 말투지만 담담하게 알려준다. 생전에 아사미는 동사무소 직원이었다. 그래서 더 묘하게 느껴진다.
아사미 : 그래서 다음에 전 어디에 뭘로 다시 태어나는지 알 수 있나요?
접수원 : 네 콘도 아사미님은 과테말라 남동부의 큰개미핥기시네요.
아사미 : ?…네? 죄송한데 뭐라고요?
접수원 : 과테말라 남동부의 큰개미핥기십니다.
아사미 : …큰개미핥기…? 음…인간이 아니네요?
접수원 : 네 그렇습니다
아사미 : …음…저 왜 큰개미핥기가 되는 거죠?
접수원 : 기본적으로 콘도 아사님의 생전의 삶에 근거하여 큰개미핥기로 정해졌습니다.
일찍 죽은 것도 억울한데 내 생전의 삶이 큰개미핥기로 환생할 정도로 형편없었나? 하지만 아사미에겐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 바로 다시 ‘콘도 아사미’의 삶을 살아가는 거다.
2회차 삶을 살게 된 아사미는 덕을 쌓아야 다음에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말에 유치원 때부터 열심히 덕을 쌓는다. 33세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 아사미는 당시 유치원 선생님과 학부형이 불륜관계가 되어 ‘레나’라는 친구집이 이혼하고 이사를 가게 된다는 걸 기억해낸다. 그리고 선생님을 부단히 꼬시는 모습을 포착해 미션임파서블이라도 찍는 것 마냥 치밀한 작전을 세워 불륜을 미연에 방지한다. 이 외에도 몇 가지 이전 생에서는 그냥 지나쳤던 일 몇 가지를 해결해 간다.
그렇다 한들 아사미의 삶이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이미 33세의 두뇌를 가지고 태어났으니 이번엔 좀 더 공부해서 공무원이 아닌 약사가 된다. 하지만 근무지역은 동사무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어쩌다 1회차 인생에서 늘 점심을 함께 먹으며 직장 뒷담을 까던 동료들을 만났다. 당연히 아는 척할 순 없지만 그들은 자신의 존재만 없는 그 식당에서 직장 뒷담이 아닌 연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묘한 이질감과 불편한 기분을 느낀다.
어쨌든 아사미는 1회차보다 능력 있고 차분한 사람이 됐지만 그냥 그 뿐이다. 똑같은 친구들, 가족, 소소한 대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 아사미에 인생에 지속적으로 출현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 개성이 있지만 적고 나면 별거 아닌 그런 캐릭터들이다. 굉장히 평범하고 리얼한 인물들만 나온다.
현재 내 삶이 만약 드라마가 된다면? 딱 그런 느낌이다.
나에게는 드라마틱하고 소중하고 유쾌하고 또는 빌런 같고 그런 다양한 인상과 느낌을 주는 주변 인물들이지만, 그들을 실질적으로 연출하면 어떨까? 아마 굉장히 심심하고 밋밋한 캐릭터일 거다. 개인적으로는 감정 조절이 어려울 만큼의 사건들이지만 드라마나 영화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평이하고 재미없는 일이겠지.
자신의 절친을 한 번 떠올려 보자. 절친들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 늘 나오는 얘기, 동창들의 별명, 그래서 걔 어떻게 산대? 이야~ 걔가 얘가 둘이라고? 진짜? 옛날엔 그런 이미지 아니였잖아. 어머어머! 이런 느낌이다. 실제로 내 짝꿍은 본인의 절친을 진짜 개그맨이라고 둘이 전화만 해대면 그렇게 웃어대는데 솔직히 나는 하나도 안 웃기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다음 생에는 내가 왕비야, 내 남편하곤 니가 결혼이나 해라 등 최근 나오는 시간회귀물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그저 개인의 인생을 시간순으로 그대로 보여주는 느낌이다.
이 드라마에는 니체의 영원회귀 그리고 불교의 윤회사상이 담겨있다. 큰개미핥기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덕을 쌓아야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건 윤회사상에 가까운 개념이다.
반대로 계속해서 ‘콘도 아사미’의 삶을 반복하는 건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에 맞닿아 있다. 니체의 따르면 우리 인생은 사실 무한 반복되고 있다고 한다. 그건 결국 일어날 일은 계속 일어날 것이며 눈 앞에 발생하는 일에 대해 그저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대응한다면 무한 순응하는 인생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본다. 또는, 지금 내 현실 중 어느 평화로운 일상이 아주 소중하다는 뜻이다. 내 삶에서 이게 진짜 내 삶이구나 라고 느낀 게 어느 시점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개념이다.
아사미는 4회차 인생에서 이전 친구들과의 인연을 포기하고 오로지 공부에 전념한다. 그리고 미생물 연구자로서 논문을 발표한다. 논문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롭게 작용할 거다. 즉 아사미는 덕을 쌓았다. 어딘가 심심한 인생이지만 그냥 저냥 살아가는 도중에 자신처럼 생을 반복하고 있는 친구를 알게 된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되는데…
아사미는 5회차 인생을 마지막으로 환생한다. 아사미가 뭘로 환생했을지는 꼭 드라마를 보고 확인해 보시길! 그만큼 이 드라마는 소소한 일상을 다루고 한 개인에게 깊이 있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주 미시적으로 말이다.
5회차 인생에서 일생(사실 5생) 일대의 사건을 해결한 후 아사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1회차 인생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지루하다면 지루한, 그렇지만 평화롭기 그지없고 익숙한 삶으로 말이다. 그리고 주어진 수명까지 살아갔다.
아사미는 5회차에 걸쳐 그 소소한 일상이 진짜 내 삶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어떤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의 모습이 불편하고 따분하고 지루한가?
단순히 남들이 정해 놓은 평가 지표에 점수를 매겨보니 평균보다 낮은 점수라 불만족스러운가? 중요한 건 지금 내 삶을 다시 살고 싶을 정도로 소중한가를 인지하는 것이다.
아사미는 1회차의 그 삶을 사랑했다. 그리고 5회차에 걸쳐 다음에 인간으로 환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고 1회차의 삶을 완성시켰다. 그러니 이 드라마의 주제는 단순히 현재의 일상을 소중히 하라는 뜻이 아니다. 다시 되돌아갈 정도로 만족한 삶을 살고 있느냐고 묻고 있다. 내가 지금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나는 새로운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나로서 다시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는지, 내 인생 이런저런 일 있었지만 정말 좋았지 잘 살았네, 하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느냐고 묻는 거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삶과 인생을 재조명해보는 드라마. 인물들의 이야기가 소소하면서도 스펙타클해서 처음엔 느슨한 자세와 미소로 보지만 점점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그리고 간만에 오열했다.
이 이상한 감정선을 당신도 꼭 느껴 보길 바란다. 기억에 오래 남는 드라마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