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왜 게이 아저씨 둘이 밥 해먹는 거 보고 힐링되지?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을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숏폼에 익숙해져 바로바로 쾌락이라는 보상을 얻는 것에 우리는 참 익숙하다. 이런 도파민 중독이 만연하여 사람들은 긴 글을 읽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독서를, 운동을, 몰입을 추구하게 된다.
매일매일 가볍게 하루 한 번 몰입을 즐기는 한 변호사가 있다.
그의 하루에 한 번씩 진행되는 몰입은 바로 ‘요리’다. 매일 한 번씩 완성을 즐길 수 있고 더불어 건강과 지갑 사정을 좋게 만들어준다. 그는 이런 일상이 소중해 변호사 사무소 역시 정시 퇴근이 가능한 곳을 선택했다.
이 드라마의 원작은 만화다. 15년 전(와, 말하면서도 너무 오래돼서 놀랬다) 내가 일본 유학 생활을 하던 때 작은 자취방에서 이 만화책을 보며 혼자 밥을 해먹기 시작했다. 그 요리들을 하나하나 따라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역 인근 마트 세 곳의 가격대를 비교하며 장을 보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별 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그 소박한 요리를 통해 하루하루 만족감을 느끼고 생활감을 흠뻑 느꼈던 것 같다. 그만큼 공감 많이 하고 활용하고 생활에 적용했던 만화책이었다. 그 만화가 실사화 돼버린 거다.
일본의 실사화는 좀 공포스럽다. 내 상상 속을 헤집고 들어와 흙을 뿌리고 똥칠을 하고 간다. 원작이 만화여도 그러니까 이미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나는 실사화를 싫어한다. 그러니 이 만화 역시 엄청나게 현실적이지만 이걸 아주 잘 살려내야 할텐데 그럴 수 있을까 싶었다.
주인공은 시로와 켄지. 40대 아저씨들인데 둘은 게이고 함께 사는 파트너다.
기본적으로 동성애가 소재로 들어가게 되면 그들이 겪는 차별과 편견, 역경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그래야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기도 하고 어쩌면 작품마다 주장하고 호소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아니다. 그냥 단순히 게이커플이 주인공일 뿐이다. 물론 당연히 겪을 수밖에 없는 일들도 나오지만 그 또한 매우 리얼하다. 변호사인 시로는 직장에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으니 동네에서 하는 행동거지에도 조심한다. 워낙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게이 이미지와 다른 편이기도 하여 편하게 숨기고 살아간다.
반면에 파트너인 켄지는 직업도 미용사이고 엄머엄머 호호~ 힝~ 이런 말투를 쓰는, 게이가 아닌 게 더 이상할 정도로 드러내고 사는 사람이고 당연 직장내에서도 커밍아웃을 했고 당연스레 받아들여진 상태다. 그 둘의 연애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생활툰 느낌의 드라마다. 계절별 그리고 약간의 에피소드와 요리들이 버무려져 나오고 사실 누가 봐도 요리가 메인이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란 게 참 행복이고 감정 그 자체이고 어쩌면 내 삶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확실히 사 먹는 음식도 참 맛있지만, 순간 반할 만한 맛들이지만 스스로 나와 내 파트너의 건강을 생각하며 그 날의 찜찜함 또는 답답함을 요리하는 과정에서 다 씻겨내고 식사를 준비했을 때, 내 생각대로 내가 의도한대로 테이블 위에 한상이 올려졌을 때 우리는 조금은 느리지만 충분한 만족감을 맛보는 듯하다.
나도 만화책을 보고 난 후 매년 시로와 비슷한 시기, 그러니까 딸기가 끝물일 때 싸게 딸기 두 팩을 사서 딸기잼을 만든다. 전체 딸기 용량의 30% 정도 되는 설탕을 넣고 나무주걱으로 딸기의 붉은 색이 빠졌다가 다시 돌아가는 과정을 즐긴다. 그렇게 상큼한 신맛과 단맛으로 만들어진 수제잼은 나의 소중한 가족들과의 주말 브런치를 즐기는데 사용된다. 요리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요리의 즐거움을 그리고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드라마. 어쩌면 일상의 한 조각을 만들어주는 드라마다.
한동안 딸기값이 금값이라 시도할 수 없었지만 또다시 다가올 딸기 끝물에 나는 구두쇠 시로처럼 딸기를 저렴하게 구입해 붉디 붉은 딸기잼을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