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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철 Jul 11. 2024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없다면...'콰르텟'

삼류 베짱이들이 사는 방식 

2017년에 제작된 '콰르텟'. 

사실 좀 많이 일본스러운 작품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하고 싶다. 


약간의 방황, 그리고 끝없이 구덩이를 파고파고 내려가는 우리의 진로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구덩이를 즐겁게 파는 법을 알려줄지도 모른다.  


얄미울 정도로 당신네 속내를 드러내며, 늘상 약간의 말다툼이 번지는 네 명의 남녀. 

이들은 그저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음악으로 먹고 살 수는 없지만,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는 네 명이 모여 4중주단(콰르텟)을 꾸려 함께 지내는 내용이다. 

왼쪽부터 이에모리, 마키, 스즈메, 벳푸

간단히 등장인물을 소개해보자면, 

마키(마츠 다카코)는 퍼스트 바이올린 담당으로 정식으로 음악활동을 했으나, 결혼 후 그만뒀다가 남편의 가출을 계기로 다시 음악을 시작한다. 

벳푸(마츠다 류헤이)는 세컨드 바이올린으로 천재 음악가 할아버지의 후광에 못 미치는 덜 떨어진 남자. 할아버지 소유 회사에 낙하산으로 입사해 널널하게 회사에 다니고 있다. 

스즈메(미츠시마 히카리)는 첼로 담당으로 거리에서 첼로를 연주하고 규칙적인 생활리듬이 아예 없는 거의 슬라임 인간. 

이에모리(다카하시 잇세이)는 비올라 담당으로 소위 알바로 먹고 사는 프리터이며, 여자 좋아하고 가벼운 느낌이지만 알고 보면 이혼 경력에 애까지 있는(심지어 아이에 대한 애정이 매우 큰) 남자.     


오합지졸과도 같은 이 네 명은 어디든 상관없이, 기꺼이 벳푸회사의 도너츠 로고로 랩핑된 차량에 몸을 실고 상점가, 마트 등에서 간간히 연주회를 한다. 그들은 도쿄의 어느 노래방에서 각자 자신의 악기를 한참 연주하다가 동시에 문을 열고 나와 서로를 마주치게 된다. 그렇게 의기투합해 주말마다 가루이자와 별장에 모여 연주회를 했고, 결국에는 모두 가루이자와 별장으로 이주해서 그곳에 살게 된다. 왜냐? 그들은 가난했고 정직원이 아니였고, 음악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지.  


그렇다고 그들이 미친 열정으로 연습을 하진 않는다. 요즘 시대에 잘 나가는 베짱이가 아니라 진짜 좀 한심한 베짱이들의 모임이다. 미친 솔직함으로 똘똘 뭉친 것 같은 이들은 사실 각자 비밀을 안고 있고 거짓말을 친다. 철저히 숨기는 듯하다가 별 일 아닌 곳에서 봇물 터지듯이 진실을 토해낸다. 기본적으로 덤덤하다. 덤덤한데 좀 촉촉하다. 게다가 이 네 명의 주연 배우들은 다들 꽤 잘 나가고 실력 있는 배우들이라 섬세한 감정선 역시 잘 표현해낸다.  


할아버지의 별장을 제공한 벳푸가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그런 정상적인 행동이 나머지 세 명 사이에선 꽤나 특이해 보인다. 벳푸는 할아버지 연줄로 들어간 회사에 꾸역꾸역 다니지만 사실 그의 삶의 진정한 낙은 주말에 하는 연주뿐이다. 그는 이 4중주단이 위기에 빠졌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착실하지 않은 우리들이 너무 좋은 거라고, 너무 착실하고 성실해선 안 된다고, 그럼 그건 우리가 아니라고. 그리고 마키는 자신들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는 결점으로 이어져 있는 사이라고,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한다. 다른 여주인공 스즈메는 어딘가 엉뚱한 캐릭터인데 사실은 한없이 속이 깊고 상처받기 싫어 거리를 두는 그런 역할이다. 거짓말을 치지만 늘 죄책감을 가지고 결국 스스로 판단을 내려 거짓말을 고백하기도 하는, 솔직하고 당차면서 상처가 있는 캐릭터다. 그렇다고 비운의 여주인공 같은 느낌은 아니다. 꽤나 유쾌하다. 나머지 한 명 이에모리는 어찌보면 가장 비중이 없을 수도 있는데 또 그런 부분을 살려서 개그캐의 존재감을 돋보이고 있다. 이 드라마 자체가 워낙 숨겨진 이야기가 많아 어디까지 얘기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일본 드라마 특유의 무덤덤하면서 소소한 감동, 뚜렷한 스토리는 아니지만 점들이 이어져 선을 그리는 듯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봐야 한다. 아, 3화까지 참고 보자. 원래 명작은 3화부터다. 그냥 내 생각이지만 호호.  


세간에서는 낙오자, 실패한 인생이라 불리지만 주인공 네 명은 그저 즐겁다. 

우리 왜 이러고 살지? 이러면서도 마냥 네 명이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고 악기를 연주하고 별 소득도 되지 않는 연주회를 다니는 게 그렇게도 신난다. 어디 가서 프로로 인정받지 못해 음원에 맞춰서 악기를 연주하라는 말에 스즈메는 이런 거 싫다고 하지 말자고 눈물을 글썽이지만, 마키는 그냥 하자고 한다. 못할 거 뭐 있냐고, 삼류 연주자라는 말에 부합되게 잘 하고 오자고, 그리고 언젠가 큰 강당에서 연주회를 열자고 말한다.  


일본은 버블경제가 무너지고 디플레이션이 지속되면서 국민들 모두 패배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아서 그런지 실패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야욕 넘치게 극복하자는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실패를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그냥 내 마음 가는대로 사는 게 진짜 인생이지 라는 메시지를 담은 드라마가 많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 기본 태도는 야욕 넘치지만, 사실 실패를 받아들이고 내 안의 즐거움, 그리고 행복감을 유지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인생은 기본 씁쓸할 수 있지만 그 쓴 맛을 좋아하고 달게 느끼고 그리고 도망가는 방법, 멈춰 서서 나를 지키는 법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는 자신들이 삼류 연주자이지만 연주를 좋아하고, 업으로 삼을 순 없지만 계속 하려면 가끔은 비굴해지기도 하고 처참해질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인다. 우리는 꿈이라는 진흙탕에 빠진 베짱이라고 말하며 말이다.  


늘 좋아하는 걸 하며 살 순 없다. 정말 좋아하는 건 취미로 둔 채 열심히 살아가는 개미가 대부분일 거다. 개미로 살아가는 내 안의 갈증을 이 한심하면서도 귀엽고 때로는 인간미 넘쳐 어휴 저건 아니지 싶은 행동도 일삼는 이 4중주단 멤버들이 조금은 해소해줄 거다.  

마트에서 연주하는 멤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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