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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Choi Dec 31. 2017

쓸데없는 글을 쓰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 바를 운영하던 스물아홉 살 무렵, 야구장 외야에 누워있다가 문득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부터 저녁마다 - 가게 문을 닫고 집에 오면 아마도 새벽이었겠지만 - 틈틈이 쓴 글을 모아서 출품한 것이, 곧바로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가 되었다. 물론 한동안은 재즈 바도 함께 운영했지만, 두 번째인가 세 번째 작품을 탈고한 뒤에야 비로소 "소설가로도 먹고살 수 있겠다" 싶어 가게 문을 닫고 작가로 전업했다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작년 이맘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재능이 있는지 여부를 떠나서 나를 위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 즐거운 이야기든 슬픈 이야기든, 허구의 이야기든 사실을 기록한 것이든, 턱 밑까지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차올랐을 때 그것을 써 둔다면, 글을 쓰면서 마음이 정리되기도 하고 또 나중에 돌아봤을 때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는 야심 차게 새해 계획에다가 이렇게 적어 넣었다. 


"글을 쓸 것."


원래 목표는 장대하게 세우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정작 글을 쓰려고 앉으니까, 딱히 쓸 말이 없는 것이다! 커피 덕후인 친구에게는 커피에 대한 글을 써보라고 부추기고, 데이터 일을 하는 친구에게는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써달라고 졸라놓고, 정작 나는 어떤 장르에 대해서도 쓸 수가 없었다. 일에 대해 쓰자니 아직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삶에 대해 쓰자니 삶의 대부분이 일인 상황..예전에 소개팅 나가서 회사 이야기만 하다가 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물론 그것 때문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왠지 쓰고 싶지가 않았다. 비슷한 이유로 사람들을 만나기가 싫을 때도 있지 않나요? 아무튼 전문적인 이야기를 할 깜냥은 안 되고,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를 쓰자니 부끄럽고... 마치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재료가 없으니 오늘은 신라면, 내일은 짜파게티 이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열두 달이 지났다. 바쁘거나 게으르거나 둘 사이에서 줄을 타면서. 그런데 며칠 전부터 왠지 이대로 올해를 보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계속 드는 것이다. 올해 목표라고 써놨던 다른 것들은 결과가 어떻게 됐든 그래도 시도는 해 봤는데, 글을 쓴다는 것은 시작조차 못 해본 것이 못내 찝찝했다. 그리고 그 찝찝한 마음을 안고 송년회들을 다니다 보니 올해가 다섯 시간 정도 남았다! (써놓고 보니 정말 게으르군요.) 나는 왠지 예전에 적어둔 말들이 지금의 행동들을 결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딱히 규칙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쩐지 길게 세워둔 계획들은 거기에 적힌 대로 움직이게 된다. 예전에 회사를 그만둘 때도 그랬다. 연말에 책상 서랍을 정리하는데, 이런 게 있는지도 까맣게 잊고 있던 (무려) "인생계획"이 툭 튀어나왔던 것이다. 


"3년간 몸 담은 회사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한다."


스물네 살 때 군대에서 세운 계획이라 왠지 지켜야 될 것 같았던...


그런 저런 이유로 몇 달 만에 브런치 계정을 찾아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시험은 모두 벼락치기로 봐 왔으니까 뭐, 나이 먹는다고 변하는 건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일에 대해서는 잘하는 것이 별로 없고, 삶의 대부분은 일의 연장선이라 노잼인 라이프지만, 어쨌든 나를 위해서 무슨 내용이든 한 번 써보려고 한다. 그리고 내용은 가능하면 쓸데없는 내용이면 좋겠다. 쓸데 있는 글을 쓸 자신도 없거니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글은 도움을 받는 쪽에서도 별로 달가워할 것 같지가 않아서다. 모든 게 꼭 쓸모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최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선에서 써 보려고 한다. 마치 나의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처럼.


자 그럼 별로 독자는 없을 것 같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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