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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Choi Nov 03. 2019

굿바이 롸켓

올해 프로야구 시즌이 다 끝났다. 야구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누군가 내게 어느 팀의 팬이냐고 물으면 언제나 "LG트윈스"라고 대답한다. "서울은 역시 LG죠"라고 대답하면 열에 아홉은 실없이 웃는데, 25년째 우승을 못한 팀이지만 그래도 자랑스럽게 LG팬임을 밝히는 데서 오는 자신감이랄까, 일편단심이랄까, 그런 것들이 주는 호감 때문이라고 믿고 싶지만... 사실은 그게 진짜 농담이라고 생각해서일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소위 야잘알 분들은 꼭 거기서 정색을 하고 "서울은 두산이지" 같은 말을 꼭 덧붙이는데, 자고로 서로 잘 지내고 싶다면 종교나 정치 같은 믿음의 영역은 건드리는 게 아니죠.


처음 LG팬이 된 계기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 반 친구가 사계절 내내 LG 트윈스 어린이 야구단 옷을 입고 다녔기 때문이다. 하얀색 바탕에 검정 세로 줄무늬로 상하의를 말끔하게 빼입고 바지를 허리춤까지 끌어올리고 다녔는데, 배가 뽈록 나와서 굉장히 귀여웠다. 그 친구 덕분에 유지현과 서용빈이 누군지 배웠고, 타율과 방어율을 배웠다. 만일 조카가 공룡 이름 대신에 주전 엔트리 선수들의 BaBip을 외우고 다닌다면 LG 다음으로 그 팀을 응원해줄 생각도 있다. 그 전에 LG팬으로 만들어 버릴 생각이지만.


하지만 LG 팬이면서도 정작 야구를 오랫동안 찾아 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는 이름은 이병규, 박용택, 이동현 등 몇 명 뿐이다. 마지막으로 경기를 제대로 본 건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9회말 이승엽, 마해영에게 연타석 홈런으로 역전을 당하며 우승을 내준 기억이고, 그 뒤로는 한동안 경기를 보지 않았는데 자세한 이유는 묻지 마시길. 심지어 몇 년 전에 처음으로 직관을 갔을 때 유강남의 응원곡이 신나서 이름을 기억했는데, 포수라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뒤였다.


나름 유명한 투수들도 있는데 왜 굳이 이동현을 기억하느냐고 묻는다면, 꽤 오랫동안 LG가 선발 야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한동안 이동현이라는 이름을 굉장히 자주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기든 지든 아무튼 언제든 감독이 부르면 올라와서 묵묵히 공을 던지던 선수. 이동현이 올라왔으니 더 점수는 안 주겠네 - 하는 생각이 들게 하던 선수. 긴 암흑기를 지나 오랜만에 가을 야구를 할 수 있게 해줬던 선수.


그런데 올해 여름, 야구를 보다가 문득 이동현 선수가 한동안 안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은퇴를 했나 싶어서 여기 저기 찾아봐도 아무 뉴스도 나오지 않아서 한동한 궁금했는데, 시즌이 막바지를 향해 가는 8월이 된 어느 날에야 그가 2군에서 오랜만에 1군에 올라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올해 나이 서른 일곱.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부상에 시달렸던 그는, 또 다시 긴 재활을 거쳐 1군에 올라온 뒤 몇 경기만에 통산 700경기 출장을 달성한다. 한 팀에서만 19년간 700경기를 뛴 선수가 된 것이다.


700경기 째 마운드에서 내려온 이동현. 아무도 이게 그의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열아홉의 롸켓... 고생 많이 했군요...


2001년 열아홉의 나이로 프로에 데뷔한 그는 원래 강속구 투수였다. 하지만 혹사 끝에 팔꿈치 인대를 다쳐, 무려 세 차례에 걸친 토미존 수술을 받고 5년이란 긴 재활 기간을 거친다. 한 번만 받아도 재기가 정말 쉽지 않다는 수술을, 그것도 강속구 투수에게는 치명적이라는 팔꿈치 수술을 세 번이나 받고 다시 공을 던진다는 건 도대체 어느 정도의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지 잘 상상도 되지 않는다. 보통은 발목만 살짝 삐어도 하루가 불행해지는데 말이죠.


그동안의 공로와 헌신을 생각하면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법도 한데, 700경기째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마운드를 내려온 그는, 덕아웃에 들어가 혼자 눈물을 훔친다. 그저 감격스러운가보다 -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다음 날 기사를 보니 은퇴라고 했다. 이게 마지막 경기라고 처음부터 마음 먹고 올라간 것이다. 오랜 부상과 수술, 재활, 오랜 암흑기, 가을 야구, 이런 저런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겠지. 이제 정말 끝이구나, 여기까지 잘 버텼구나, 하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마지막까지 혼자 묵묵히 은퇴를 생각하는 모습까지 정말 그다웠다.


나이를 한 두살 더 먹고 회사를 다닌 시간이 조금씩 길어질 수록, 꾸준하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가를 생각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음처럼 되는 일이 잘 없다고 느낄 때가 훨씬 더 많고, 노력한 만큼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도 많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한 두군데씩 아픈 데가 생겨서 무너지기도 한다. 그런데 19년 간 한 팀에서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붓고도 '남은 인대는 아들과 캐치볼 하는 데 쓰고 싶으니 이해해 달라'고 말하는 선수가 있다니. 


다른 에이스 선수들만큼 주목을 많이 받던 선수도 아니고, 더구나 저평가 받는 중간 계투 역할이었지만, 25년째 LG팬인 나에게 최고의 슈퍼스타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 이동현이다. 그의 새로운 야구 인생에서는 좀 더 행복한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기원해 본다. 굿바이 롸켓.





"무적엘지~유강남~오오~오오오~"는 정말 잘 만든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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