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두 번째 이야기, 설악산 (2)
우리가 흔히 하늘 아래 같은 색은 없다고 하는데, 자연을 보면 그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하늘 아래 같은 초록색은 없다." 어떻게 초록색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을까? 특히 푸르는 봄날에 방문한 설악산이라 더 그렇게 느낀 것 같다.
금강굴에서 후다닥 하산 후 울산바위 올라가기 전 빠른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입에서 입으로 들려오는 설화의 주인공 울산바위를 만나러 올라갔다. 먼저 울산바위를 만나기 전 흔들바위를 만났다. 흔들바위에는 여럿 사람들의 추억이 많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아저씨의 추억은 "예전에는 이게 흔들렸는데, 지금은 꿈쩍도 안 하네."였고 우리 엄마의 추억은 "수학여행지로 흔들바위까지 갔는데, 아직 잘 있지?"라며 흔들바위의 안부를 물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내가 큰 아이 3살 때 여기 왔는데, 벌써 그 아이가 23살이야."라며 20년 만에 온 이곳을 추억하고 있었다. 힘껏 밀어보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은 흔들바위를 보며 '각자의 추억들이 쌓이고 모여 흔들바위가 더 무거워져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라고 생각했다. 나도 26살의 추억을 여기에 쌓고 언젠가 다음에 방문하면 꼭 꺼내봐야겠다.
무난하다가 또 나타난 철계단코스이다. 여기서부터는 끊임없는 계단에 너무 힘들고 우선 무서웠다. 사진을 보면 옆에 보지 못하고 돌진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금강굴코스, 울산바위 코스가 같았던 대구아주머니를 만났다. 금강굴에서는 잠시 스쳐 지나갔고 흔들바위에서 사진을 찍어드리고 울산바위 철계단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다. 3번의 우연이 반복되어 나의 울산바위메이트가 되어주셨다. "같이 동행해도 되나요?"라고 물으신 말에 나는 오히려 감사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무서웠던 계단이 조금은 괜찮아졌고 이야기가 잘 통해 너무나 재밌었다. 여러 사진을 찍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했다. 서로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아주 천천히 울산바위를 향해 올라갔다. "속초에서 보이는 울산바위가 궁금해서 저는 직접 올라오게 되었어요."라는 말씀에 잊고 있었던 2년 전 나의 다짐이 떠올랐다. 일정이 있어 잠시 머물다 간 속초는 어디를 가든 설악산이 보였다. 설악산을 보며 '내가 꼭 저기를 가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여기에 있다. 이야기가 잘 통할 수밖에 없는 나와 결이 비슷한 분이었다.
잠시 멈춰 풍경을 바라보는데 저 멀리 바위가 만두를 닮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걸 만두바위라고 부르기로 했다. 여기서 만난 아저씨는 "저거 내가 왕년에 저기에 올려놨는데, 아직까지 잘 버틴고 있네. 아마 태풍에도 끄떡없을 거야"라며 내려가셨다. 익숙하게 많이 들은 말, 우리 아빠가 산에 가면 하는 말씀과 똑같았다. "내가 저 바위 하나 세웠는데, 또 만났네"라고 어느 산에서 했던 말이 메아리처럼 겹쳐서 들렸다. 그 생각이 나서 재밌고 웃겼다. "그러게요. 덕분에 더 멋있는 풍경을 볼 수 있네요."라며 농담에 대답을 던져 봤다. 산이니까 할 수 있는 이런 농담의 재미였다.
드디어 울산바위다. 이야기로만 듣던 이곳에 내가 온 것이다. 금강산 신선이 일만이천봉 봉우리를 만들기 위해 전국의 바위를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울산바위도 이 소식을 듣고 금강산에 가던 중 힘들고 날이 저물어 설악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다음날 금강산의 일만이천봉우리가 이미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울산바위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설악산이 아름다워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고향이 울산이라서 울산바위인 걸까? 그런데 진짜 울산이 산지인가? 분석결과가 있는 것인가? 일만이천봉우리가 만들어진 소식을 어떻게 빨리 들었지? 모르고 출발했다면 울산바위는 다른 곳에 있지 않았을까? 옛이야기에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4년 간 들은 내용이 있다고 전공생각도 약간 더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울산바위가 움직였을 생각을 하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저 거대한 암석들이 떨어지지 않고 울산에서 여기까지 움직였다는 게 상상의 나래를 자극했다. 울산바위가 설악산에 있어 다행히 이런 멋진 절경을 볼 수 있었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우리로 선택되었다면 지금의 너를 만나지 못했을 거야.
울산바위를 올라가다가 또 한 분을 만났다. 그분을 속초 아주머니셨는데 고수의 향기가 났다. 천천히 올라오라면서 먼저 올라가셨는데 울산바위에서 마주하였다. 여기는 추천해 주신 명당자리였다. 가만히 앉아서 풍경과 함께 쉬고 가면 산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 좋다고 알려주셨다. 거의 매일 올라오신다는 말에 대단해 보였고 동네산이 설악산이라는 말에 부러웠다. 명당자리 이곳에서 세 명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몰랐던 설악산에 대해 듣고 말로만 듣던 공룡능선도 알아가고 설악산 추천코스, 고성여행지 등 엑기스를 꽉꽉 담아 로컬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다음날 코스로 금강산 신선대를 말해주셨고 산을 가리키며 코스랑 팁도 알려주셔서 꼭 가야지 다짐했지만 다음날 근육통과 발의 물집으로 미래를 기약하기로 하였다. 원래 나의 속초계획은 대청봉과 신선대였는데 다음에 속초를 또 방문할 이유로 남겨두었다. 한편으로 산불통제기간으로 대청봉을 가지 못해 아쉽지만 설악산에 새로운 코스를 알게 되어 즐거웠고 좋은 분들을 만나 행복했다. 아마 대청봉을 갔다면 설악산에 다른 코스는 한참 한참 뒤에 방문하거나 가지 않았을 수도 있기에 다르게 생각하면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이렇게 다른 코스들은 또 다른 풍경을 전달해 주니까, 계절마다 다르니까, 날씨마다 다르니까 그래서 가도 가도 재밌고 질리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정말 힘겹게 올라오신 아저씨가 우리 이야기를 들으며 속초아주머니에게 "이렇게 힘든데 또 오고 싶으세요? 매일 오면 힘듦이 덜 해지나요?"라고 물어보셨다. 아주머니는 "매일매일 오고 싶죠. 매일 와도 힘든 건 똑같아요. 하지만 언제쯤 힘들지를 알고 그 힘듦이 끝난다는 것을 아는 거죠."라고 답하셨다. 명언 같은 답변이었다. 오르막 길을 오를 때면 그 누구보다 엄청 힘들어하는 나는 어느 순간에 힘듦이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밑에서 볼 수 없는 그 광경을 보기 위해 산을 오르는 것 같다.
힘듦이 끝난다는 것을 아는 거죠.
등산하는 나를 예쁘게 봐주신 대구아주머니와 속초아주머니 덕분에 울산바위 등산을 너무 재밌게 했고 많이 배워가고 알아간다. 그리고 거북이 등딱지 같은 내 가방이 오늘 산행에서 큰 편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들 가벼운 차림이지만 4박 5일 짐을 가지고 속초 온 나에게는 이 가방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등산 초보라 적절한 가방 사이즈 등 모르는 게 아직 많다. 속초아주머니는 미리 예행연습한다고 생각하라며 나중에 더 긴 코스를 가면 가방에 많은 것을 싣고 무게를 견뎌야 한다고 하셨다. "맞아요. 저는 오늘 예행연습 중입니다."라고 외치며 공룡능선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아니지만 경험치가 더 쌓이면 난 대청봉과 공룡능선을 가기 위해 설악산을 다시 올 것이다.
설악산을 등산하면서 외국인 등산객을 정말 많이 보았다. 절반 이상으로 외국인이 많았고 산에서 이렇게 많이 보는 건 처음이었다. fighting, good luck을 서로 말하며 응원해 줬다. 어떤 분 모자에는 크게 "대박"이라고 적혀 있어 신기했고, 한글이 정말 빼곡하게 적힌 티를 입고 와 옆의 친구를 보여주며 오징어게임 티셔츠를 자랑했다. 우리나라를 이렇게 사랑한다는 것이 느껴져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나의 1시간 쉼터에 사람들이 떠나가고 설악산을 마음에 꾹꾹 담은 나도 이제 일어나 본다. 혼자 산행하면서 좋은 분들을 만나 웃음이 끊이지 않은 시간이었다. 내려가면 좋을 분들을 만날 거라고 행운을 빌어주셨는데 정말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좋은 분들과 다음날 일출을 보러 간 행운이 있었다. 큰 지구에서 그냥 지나갈 수 있지만 잠시나마 마주하여 이야기했던 귀한 인연은 내 추억이 되었다. 여행에서 만난 좋은 분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하다.
설악산국립공원
1970년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65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국제적으로도 그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1982년 유네스코로부터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관리되고 있는 지역이다. 설악산국립공원의 총면적은 398.237㎢에 이르며 행정구역으로는 인제군과 고성군, 양양군과 속초시에 걸쳐 있는데 인제 방면은 내설악, 한계령~오색방면은 남설악, 그리고 속초시와 양양군 일부, 고성군으로 이루어진 동쪽은 외설악이라고 부른다. 설악산은 주봉인 대청봉을 비롯하여 소청봉, 중청봉, 화채봉 등 30여 개의 높은 산봉우리가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