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겨낸 설악산의 금강굴

국립공원 두 번째 이야기, 설악산 (1)

by 요모조모

어디 지역에 갈까 고민할 때 산이 떠오르는 건 산과 친해지려고 해서 그런가 보다. 그렇게 속초가 생각났다. 사회에 나간 지 1년 차 된 나에게 주는 쉼의 여행으로 난 속초로 떠났다. "왜 속초였을까?" 생각해 보면 설악산 대청봉을 갔다가 새파란 바다도 보고 예전에 먹었던 오징어순대와 명태회가 먹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좋았던 기억과 그때의 맛이 어렴풋이 생각나 그냥 끌리는 대로 선택한 곳이었다. 아직 등산 초보인 난 "산불통제기간"을 몰랐고 기대했던 대청봉이 막혀 버렸다. 이미 떠나기로 했기에 우선 그렇게 속초로 향했다.


산불통제기간으로 설악산 코스 중 어디를 갈 수 있는지 살펴보았고 금강굴코스, 울산바위코스, 토왕성폭포 코스 총 3개의 코스를 갈 수 있었다. 관광지인 속초에 등산화랑 등산스틱을 챙겨간 나는 이왕 갔으니 3개의 코스를 이틀에 걸쳐 다녀야지라는 큰 꿈을 가졌다. 그래서 4박 5일 일정 중 이틀은 등산 계획으로 세워 대청봉의 아쉬움을 채우려고 했다. 이번 속초는 변경의 연속이었다. 계획적인 여행을 주로 다녔던 나에게는 새로웠고 예상하지 못한 서핑을 배우면서 이틀의 일정은 하루는 변경되었다.


다음날 설악산 등산을 위해 6시 30분 첫차를 타야 했던 나는 이른 아침이기에 미리 양해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소한의 움직임을 위해 미리 준비해 놨지만 하루 같은 방에서 보내는 서로에 대한 배려이니까 기웃거리며 말할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용기 내어 말을 걸었더니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준비해도 돼요"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참 고마운 말이었고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속초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줬다. 같은 나이에 여행을 좋아하고 공통점이 많아 침대에서 정말 재밌는 수다의 장을 열게 되었다. 나는 오늘 서핑을 하고 다음날 설악산인데, 그 친구는 오늘 설악산이고 다음날 서핑을 하러 간다고 해서 너무 놀라웠다. 서핑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설악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우리는 속초를 떠나 서울 등산을 함께 하기로 했다. 오늘 하루만 게스트하우스를 같이 한다는 것이 아쉽지만 만남을 기약했기에 그렇게 잠이 들었다.


23년 05월 02일, 아침 일찍 첫차를 타고 설악산으로 향했다. 지도에 버스정보가 없어 걱정했지만 속초의 버스는 걱정한 것보다 잘 되어 있어 나중에 버스로 이곳저곳 돌아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른 아침이라 한동안은 버스기사님과 나와 둘만의 드라이브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약 1시간을 달려 설악산에 도착하여 산을 바라보는 순간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말로만 듣던 설악산에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나에게 강원도는 거의 미지의 세계였기에 더욱 그랬을지 모른다.


KakaoTalk_20230721_222921588_05.jpg

물소리, 산새소리를 들으며 아무도 없는 설악산 금강굴 코스를 만끽했다. 오늘 갈 코스는 금강굴과 울산바위 코스다. 오전에 금강굴에 갔다가 오후에 울산바위를 보며 하산하는 코스로 2군데를 가기 위해 체력을 많이 아껴야 했다. 다행히 비선대까지는 길이 무난해서 신난 발걸음을 옮겼다. 초보자들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평지길이다.


걷다 보니 와선대를 발견했다. 마고선이라는 신선이 바위에 앉아서 바둑을 두고 거문고를 즐겼다는 공간이다. 나도 이곳에 앉아서 신선놀음을 하고 싶었지만 갈 길이 멀어 발걸음을 서둘렀다.


KakaoTalk_20230721_223832813.jpg
KakaoTalk_20230721_223646272.jpg

와선대에서 놀던 마고선이 이곳에 와서 하늘로 올라갔다는 비선대에 도착했다. 미륵봉, 형제봉, 선녀봉이 보이며 저 멀리 미륵봉에 가고자 하는 금강굴이 위치해 있다. 저기에 서 있을 때는 금강굴이 보이지도 않았는데 다녀오 보니 이제 알겠다. 연못의 물이 너무나도 투명해 바닥이 보이고 이글거리는 저 울렁임이 계속 관찰하게 만들었다. 색상이 얼마나 오묘한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고 바위에 글자들이 새겨져 또 한 번 시선을 고정하였다.


비선대를 넘어 이제 본격적인 금강굴 코스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코스가 아니고 이른 아침이라 등산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길이 험해져 의심하지 않고 걸어갔다. 나는 이곳에서 미아가 되었다. 나는 우선 길치고 직진본능이 뛰어나다. 나는 여기서 왼쪽길로 올라갔고 이때는 오른쪽 길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보니 왼쪽은 길도 아닌 것 같은데 그때는 홀리듯이 저기를 오르고 있었다. 낙엽이 많고 험하기는 했지만 비선대 이후 난이도가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봤기에 무작정 올랐다. 점점 올라가는데 서 있긴 힘들 정도로 경사가 급했고,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엽과, 돌, 나무뿌리가 엉켜 있고 급경사에 발을 잘못 움직이면 순간 구를 것 같았다. 등산 다니면서 이런 아찔한 순간은 처음이라 그 순간 무서운 감정이 훅 들어와 초집중 상태가 되었다. 잠시 멈춰 지도를 켜고 살기 위해 금강굴을 검색해 봤다. 지도를 보니 금강굴 반대방향으로 경로지이탈을 했던 것이다. 등산 스틱이 있어 거기까지 올라갔고 등산 스틱이 있어 살아 내려올 수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내려왔는지 모르게 허겁지겁 내려와 평지를 두 발로 서니 자연의 무서움이 몸을 휘감았다. 두 코스를 가기 위해 체력을 아끼려 했는데 그곳에서 30분 동안 모든 체력을 쏟아부었다. 내려와서는 빙글빙글 돌며 길을 찾기 위해 맴돌았는데 옆에 돌들이 놓여 있는 길이 보였다. 분명 눈에 보이지 않았는데 편협한 시야가 위험을 가져왔다. 쉬운 코스라는 말에 금강굴을 쉽게 봤고 초행길에 자신감이 넘쳐 위험을 가져왔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에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KakaoTalk_20230721_222921588_04.jpg
KakaoTalk_20230721_212130586_01.jpg
KakaoTalk_20230721_212130586.jpg

두려움에 돌아갈까 망설였지만 아까웠다. 살아서 내려왔는데 이대로 갈 수가 없어 다시 전진했다. 그렇게 나는 철근사다리를 마주했다. 처음에는 무난한 경사라 가볍게 올라갔다. 그런데 점점 갈수록 경사가 생기더니 아까 경로지이탈로 마주한 경사와 거의 똑같아졌다. 이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아까 구를 뻔했는데 여기는 철근 사다리를 못 가겠어?'라고 생각하며 하나씩 올라갔다. 옆은 보지도 못하고 앞만 보며 정말 기어갔고 모두 올라와서 하는 공통점인 말 한마디가 "네 발로 기어 왔어요."였다. 어떻게 내려가지 고민이었는데 적응해서 그런지 내려갈 때는 강심장으로 변해 오히려 잘 내려갔다.


드디어 금강굴 도착이다. 절경이다. 더는 말로 표현이 불가능했다. 아찔함과 두려움을 감수하고 올라올 이유는 충분했다. 금강굴은 원효대사가 수행한 곳으로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준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소원을 빌어본다. 아직 산을 많이 다닌 게 아니라 단언하지 못하지만 지금까지 봤던 풍경 중 최고라고 생각했다.


이곳에 올라왔을 때 먼저 계셨던 69세 아저씨와 약과를 나눠먹으며 잠시 이야기를 했다. 아름다운 풍경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30분째 보고 있다고 하셨다. 많은 산을 둘러봤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이제 봐서 아쉽다며 또다시 올 거라고 다짐하셨다. "여기는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있는 것 같아요."라며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 못한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아저씨보다 약 40년 더 빨리 이 풍경을 본 나는 운이 좋은 것 같다. 풍경에 대한 추억을 더 곱씹다가 어느 순간 생각나면 방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산에만 있을 여유로운 사람이니 1시간 동안 풍경을 만끽했다.


혼자 산행에 아쉬움 점은 사진인 것 같다. 그래서 삼각대와 카메라를 챙겨 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금강굴에서 풍경을 제대로 즐기며 너무나도 재밌게 놀았다. 그러다가 속초 토박이 두 분을 만났다. 물 하나 없이 맨몸으로 비선대까지 뛰어오셨다는 대단한 분들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가벼운 맨몸을 보니 내 짐이 더 많아 보였다. 이 많은 짐에 물을 넉넉하게 담아와 나눌 수 있어 다행이었다. 힘들어 보인 그분께 건넨 이 물은 생명수였을 것이다. 물과 원효대사가 합쳐지니 순간 원효대사 해골물이 떠올랐다. 잠시 N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한 분은 속초에 40년을 사시면서 처음 오는데 이런 풍경은 처음이라고 감탄하셨다. 그러면서 젊을 때 해볼 수 있는 것을 해보라며 잠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젊다는 건 정말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여행을 다니며 많이 느끼고 있다.


10시가 넘으니 사람들이 점점 올라오기 시작하고 잠시 머물렀던 이곳의 자리를 떠나 내려가본다. 얼마 내려가지 않아 또 다른 풍경이 멋있어 그곳에서 또 잠시 머물러본다.


등산 가기 전 주문한 자수 이름표를 들고 설악산에 올랐다.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좋아서 만든 "오늘도 해냈다", 어울리는 순우리말을 찾다가 발견한 "너렁청한"이다. 너렁청한은 탁 트여서 시원스럽게 넓다라는 형용사로 산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난 그렇게 너렁청한 설악산 어딘가에서 풍경을 가득 담았다.


삼각대 들고 와서 정말 알차게 놀았던 공간이다. 금강굴을 가게 된다면 여기 포인트도 구경 꼭 하고 가면 좋겠다. 이제 정말 울산바위를 향해 떠나려고 짐을 정리하는데 외국인분을 마주했다. 이곳에서 열정을 다해 사진을 찍어주고 금강굴 올라가는 길이 무서우니 조심하라고 말해주었다. 이분은 추후에도 나랑 계속 마주치는데 체력이 진짜 좋은 것 같았다. 그냥 문득 영어를 좀 더 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내가 느꼈던 감정을 다 전달 못해 아쉬운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금강굴 올라가는 게 무섭다며 scared를 외치다가 그래도 아름다운 풍경이라며 beautiful view를 반복했다. 그분은 "Good luck"을 외쳤고 나도 "Good luck"을 말하고 가볍게 내려갔다.


울산바위는 설악산(2)으로 이어집니다


[17.17km 10:16:27]

설악산국립공원

1970년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65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국제적으로도 그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1982년 유네스코로부터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관리되고 있는 지역이다. 설악산국립공원의 총면적은 398.237㎢에 이르며 행정구역으로는 인제군과 고성군, 양양군과 속초시에 걸쳐 있는데 인제 방면은 내설악, 한계령~오색방면은 남설악, 그리고 속초시와 양양군 일부, 고성군으로 이루어진 동쪽은 외설악이라고 부른다. 설악산은 주봉인 대청봉을 비롯하여 소청봉, 중청봉, 화채봉 등 30여 개의 높은 산봉우리가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냥 가을이니까 속리산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