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가을이니까 속리산으로 떠났다

국립공원 첫 번째 이야기, 속리산

by 요모조모

내가 살아가면서 요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계절의 변화를 만끽하는 것이다. 아무리 바쁘게 살아가도 봄이 오면 봄꽃을 보고, 여름이면 바다와 계곡을 즐기고, 가을이면 단풍을 보고, 겨울이면 눈을 보는 사계절이 주는 묘미를 즐겨야 하지 않겠냐며 엄마와 가끔 이야기를 한다.


22년 10월 29일, 이대로 가을을 보내기 아쉬웠다. 가을 하면 단풍이 생각나고, 뚜벅이인 내가 갈 수 있는 곳을 찾아보니 속리산이 눈에 보였다.

"그냥 가을이니까 속리산으로 떠났다."


아침 6시 50분 차를 타기 위해 5시부터 부지런을 떨며 일어났다. 아침잠이 많지만 설레는 마음인지 그래도 알람을 듣고 일어나는 게 신기하다. 가볍게 씻은 후 자기 전 챙겨 놓은 짐을 어깨에 메고 부지런히 버스를 타러 나가본다. 터미널까지 1시간이 걸려 마음은 조급하다. 사실 청주라는 도시에 온 지 이제 5개월 차이지만 아직 버스는 낯설다. 계획과 달리 내가 타고자 하는 버스는 출발하지 않고 급하게 환승을 해서 갈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시간을 점점 줄어들고 갈수록 좌석 수도 줄어드는데 마음이 더 쪼그라든다. 현장예매 밖에 되지 않아 미리 하지 못해 불안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가는 중이었다. 버스를 놓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속리산행 버스는 출발하였다.


그렇게 수많은 정류장을 들린 후 속리산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가을 하늘은 맑은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지는데 덕분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자연이 왜 한 폭에 그림인지 아는 순간이랄까? 아직 산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주차장부터 산에 걸린 구름이 멋있다며 들떠 있었다. 혼자산행이기 때문에 꼼꼼하게 블로그를 찾아보고, 어떤 코스로 갈지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속리산에는 문장대, 천왕봉 두 봉우리가 있고 최장코스지만 최고코스라고 설명되어 있었고 난 그 유혹에 넘어갔다.


걷다 보니 세조길을 만났다. 조선의 왕, 세조가 떠오른다. 세조의 피부병은 역사적 이야기로 유명했는데 그가 피부병에 걸려 요양하기 위해 속리산을 왕래했던 길인 세조길이었다. 세조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무 위의 알록달록한 색깔이 사람들의 감탄을 쏟아져 나오게 한다. 그 감탄의 소리와 낙엽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화음이 되어 발걸음을 더 신나게 한다. 천천히 표지판을 보며 빠르게 걷던 발걸음도 잠시 천천히 속도를 늦추어 저수지와 나무의 조화를 만끽하게 하였다. 길이 완만하여 가족단위도 많이 오고 인기 많은 구간인 듯하였다. 드디어 문장대와 천왕봉이 갈라지는 갈림길이 등장하였다. 아직 초보인 나는 그 갈림길에 멈춰 곁눈질로 사람들 따라 등산화를 꽉 묶고 스틱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등산 준비를 해본다. 내가 구매한 스틱은 처음 써보는 거라 언제 스틱을 쓰는지 계속 확인했던 것 같다.


문장대를 향해 오르는 길, 난 내 체력을 몰랐던 것 같다. 가고 멈추기를 여러 번 반복하며 베어 물었던 사과는 그 어떤 사과보다도 맛있었다. 올라가다가 두꺼비 바위쉼터가 보였다. 정말 두꺼비 같은 바위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500m 남았는데 그 길이 참 길게 느껴졌다. 배고파서 더 길게 느껴졌고 얼른 점심 먹겠다는 생각으로 정말 조금씩 내디뎠다. 문장대에 도착하고 인증하러 갔더니 줄이 생각보다 길었다. 정말 가을에 많은 사람들이 속리산을 찾아 약 30분을 기다렸던 것 같다. 문장대에 새겨진 주소를 보니 경상북도 상주시였다. 두 다리로 보은에서 출발하여 굽이굽이 상주까지 온 것이다. 경계를 넘어 지역이 바뀌니 뭔가 신기했던 것 같다. 산의 능선과 초록색과 빨간색의 공존이 생동감을 더해주니 산을 오른 보람이 있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좋은 풍경을 같이 즐길 사람이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혼자산행은 혼자 많은 생각하고 내 속도에 맞춰 갈 수 있지만 이렇게 공유하고 싶은 감정과 풍경을 전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든다.


아까는 너무 힘들어 문장대만 가고 포기하고 싶었는데 점심을 먹고 쉬고 나니 천왕봉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올라왔으니 보고 가야지라는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천왕봉으로 향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지만 내 체력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자연이 주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내려가기 아쉬웠고 처음 마음먹은 것을 해내겠다는 의지가 나를 가게 만든 것 같다. 신선대휴게소를 도착하자마자 죽을 것 같아 게토레이 생명수를 들이켰다. 산을 오르다가 너무 힘들면 잠시 멈춰 경치를 바라본다. 그러면서 내가 표현이 부족해 설명하기 어렵고 그곳에 있어야만 느껴지는 풍경의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이미 신선대에서 해발 1026M였기에 어느 곳에서 보든 능선이 한 폭의 그림으로 보인다. 전진해서 가는데 사람들이 멈춰서는 구간이 있어 나도 따라 멈춰본다. 사람들이 저 멀리서 "킹콩이다", "고릴라다" 외치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고릴라 두 마리가 각각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바위에 이름을 붙이는데 산에서 주는 소소한 재미같다.


이제 천왕봉이 300m 남았을 때는 진짜 체력이 고갈되고 너무라는 표현을 계속 쓰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끝도 없는 오르막길에 스틱에 의존해서 하염없이 올라가고 얼굴을 새빨개져서 터질 것 같았다. 쉬고 싶은데 이대로 멈추면 올라가기 싫을까 봐 쉬지 않고 올라갔다. 혼자 가시던 아저씨가 길이 헷갈린다며 앞에서 길을 알려주셔서 덕분에 바위를 어떻게 넘어가야 하는지 알고 무사히 도착했다. 다리가 풀렸는지 올라가는 순간 발을 헛디디고 주저앉았다가 정신 차리고 일어났다. 천왕봉 인증사진을 찍고 등산 고수 아저씨가 사진 잘 나오는 포인트를 알려주셔서 덕분에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버스 시간이 있어 조금 만끽하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버스 시간 안에 내려갈 수 있을지 몰라서 조금 서두르기 시작했다. 상고암을 걸쳐 내려가면 빠르다는 글을 보고 상고암 방향으로 내려갔다. 나는 이때 산에 사람이 없다면 잠시 멈춰 생각해봐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단풍을 보기 위해 왔던 그 많은 사람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상고암 방향은 사람들이 많이 가는 코스가 아니었고 혼자고 초행길이라 길을 몰라 약간 후회했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날이 저물어가서 무서웠지만 이미 선택한 길 묵묵하게 걸었다. 만약 다시 선택의 길에 선다면 법주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선택을 했을 것 같다. 갈림길 끝에서 법주사 이정표가 보이지 않아 그 근처를 정말 빙글빙글 계속 돌았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무한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순간 낙엽 보호색으로 보이지 않았던 표지판이 보였다. 스틱은 이미 다리가 풀려서 내려갈 때 많은 도움을 주었고, 낙엽으로 돌들이 보이지 않아 미끄러울 때 제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내려오는 길에 정상에서 만난 아저씨와 길이 겹쳐 다행히 두려움이 사라지고 잘 내려올 수 있었다. 청주를 가시는 목적지와 버스시간이 같아서 함께 4시 20분 버스를 향해 쉬지 않고 열심히 내려갔다. 여기서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서 열심히 걸었고 아저씨는 빠른 속도에 잘 따라온다고 하셨다. 발에 물집이 생겨 아프지만 고립되지 않고 무사히 내려왔다는 안도감에 너무 행복했다. 이곳저곳 많은 산을 다니신 아저씨께 여러 산에 대한 설화, 에피소드를 들었고 다양한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다면 중국에 있는 산을 가기 위해 중국어를 배우신다는 점이었다. 외국어라는 것이 쉽지 않은데 목표가 있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침마다 공부하신다는 것을 듣고 나도 무언가를 위해 꾸준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속리산에 오면 꼭 봐야 한다는 나무까지 알차게 보고 등산을 마무리했다. 다행히 4시에 잘 도착해서 버스를 탈 수 있었고 아저씨께 감사해서 박카스를 사드렸다.


속리산은 왕과 얽힌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세조길이 있고 세조가 소나무에게 정이품을 내린 정이품 소나무도 있고, 순조대왕의 태실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고양의 서삼릉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나의 첫 번째 속리산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해본다.


[18.48km 07:09:34]

속리산국립공원

1970년 6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예로부터 제 2금강 또는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경관이 빼어나다. 총 면적 274.766k㎡에 달하는 속리산국립공원은 충북과 경북의 여러 지역에 걸쳐 바위로 이루어진 산으로, 주요 봉우리인 천왕봉과 비로봉, 문장대는 백두대간의 장엄한 산줄기를 잇고 있어 암봉과 암릉이 잘 발달되어 있다. 속리산에는 많은 산들이 접해 있으며, 남쪽의 천왕봉(1,058m)을 중심으로 비로봉, 문장대, 관음봉 등 8개의 봉우리가 활처럼 휘어져 뻗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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