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를 기다리며 책이나 읽으려 했는데 읽히지도 않아서 일기나 쓰기로 했다ㅋ 아무리 B1 끝냈다고 우쭐해도 그것은 같이 B1 끝낸 친구들 또 이미 가까운 친구들에 한해서만 대화 가능하단 걸 수업이 없는 오월 동안 알게 됐다. (구글 트렌스레이터를 좀 더 자기 주도적으로 쓸 수 있다 참.)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동굴 생활을 청산하고 쉬는 김에 가지가지 모임에도 나가 친구들도 친구의 친구들도 친구들의 애인과 가족도 만나 좋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 중 몇 가지는 참 재밌어서 꼭 기록해둬야지 했는데 잘못 기록될까 아까워 아껴두다 기록되기 전에 먹혀 버렸다.
근 며칠 사이엔 블라블라카를 통해 나의 영어로 인한 사회성을 좀 더 업그레이드했다. 사실 대화의 사교적인 측면으로는 처음보는 사람과 어느 정도 이야기의 교류가 가능하고, 그래서 서로 좋은 느낌을 주고 받는 것, 이 정도가 내가 가능한 언어에 의한 사회성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 이상은 한국어로도 부족하다. ( 그 정도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느 정도의 담화와 서로의 교류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가 다음 수순인 것 같다.) 사실 모국어로도 이 정도 가능해진 지가 만 일 년이 채 되지 않았다ㅋ. 매번 기회가 올 때마다 몇 사람까지 가능 한가 시도해 보았는데 현 기록은 본인 제외 다섯명. 그조차도 반이 이미 지인이었던 경우라 갈 길이 멀다.
현재 내 독일어는 수준은 6살, 언어에 의한 사회성은 열살 배기 수준이다. 처음 영어로 관계를 맺기 시작했을 때 관계를 맺는 것이 너무 어려워 난 다시 틴에이저가 된 줄 알았다. 외국인의 삶 몇 년이 지난 지금 영어를 사용하는 나 역시 틴에이저 수준보단 자랐다.
한국어론 수줍어하지 않고 우물쭈물하지 않고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내 의견과 선호에 대해 표현할 수 있다. 피어 프레셔와 메인 스트림에 농락 당하지 않으며 말하기 싫을 때 무리하지 않아도 말하고 싶을 때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반하는 의견을 상대방을 존중해 (존중하기 싫을 때는 예외하자) 말하거나 어려운 부탁도 할 수 있다(아마도).
반면 독일어를 하는 나는 아홉 살 인생을 산다. 귀에 대고 소리지르질 않나 지우개를 뺏어가는 짝꿍이 너무 싫은데 한 마디 말도 못하는 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전전긍긍하는 나, 하고 싶은 말을 선생님이 알아주기만 원하는 나, 한마디 말 섞어 보기에도 세상이 버거운 초딩 2학년이 된다. 다행히도 어학원에서 새 문법 배울 때마다 질문하는 데 맛들려 손들고 남 들 앞에서 발표하기도 싫은 나는 면했다.
그러나 동시에 언어가 투박한 상태에서 형성되는 관계는 ..한 만큼 오히려 단순하고 정직하다. 능숙한 모국어로는 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선을 지키며 여러 겹의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능숙하지 않은 언어로는 가능하지 않다. 남을 쉽게 기만할 수도 스스로를 포장 할 수 조차 없다. 모 아니면 도, 인 아니면 아웃 같은 것들이라 그 관계들은 이해 관계에 의해 어설프게 지켜지지 조차 않는다.
그래서 약 몇 년 전 모국어를 관계를 맺는 데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힘겨운 초반을 지나자 아이 시절과도 같은 관계들이 생겼다. 우리는 예쁜 쓰레기를 주고받고 달팽이랑 거북이를 돌봐주고, 너가 내 친구라 좋아 같이 어렸을 때 손 편지에나 써주던 문장들로 서툴게 마음을 표현했다. 아직 말 못하는 내 동생을 사랑하는 것, 사춘기 때 가장 좋아하는 친구만을 향한 내 마음과도 같은, 언어가 스위칭되었기에 가능한 정직하고 단순한 관계의 기회를 능숙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얻었다.
또한 앞으로도 새로 배우기 시작한 언어를 사용해 관계를 맺는 걸 포기하지 않고, 동시에 능숙한 언어에 농락당하지 않고 정직한 내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주기적으로 꼬박꼬박 가장 능숙한 모국어로 남을 기만하기도 스스로를 포장하기도 쉬운, 나에게 가장 능숙한 방법으로 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