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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er Sep 23. 2017

토미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어제는 내가 학교에서 좋아하는, 그래서 주말이면 배회하다 결국 향하는 장소에서 영화를 봤다. 제목은 윌 플라워,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두 팔을 늘어뜨리고 영화를 보다가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학생들 무리에서 늘상 그 긴 팔을 들어 올려 인사를 해주던 추운 나라에서 온 애를 봤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작았던 것 같은데 일 년 사이 훌쩍 커버린 듯한 느낌을 주는, 작년에 봤을 때만 해도 남동생 같았는데 요샌 또 오빠 같다. (사실 이름이 기억이 잘 안나긴 하는데) 이 친구와 눈이 마주치면 왠지 모르게 따뜻하다. 알고 지낸 지 일 년이나 되가는데 여전히 서로 다가가지는 않는, 쓰다만 사물함같이 사소한 데 정만 드는 관계. how's it going? 하고 물어 오면 괜찮아, 난 좋아, 하고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면 기억나지도 않는 이 친구의 이름 따위 무슨 상관이더냐 오늘 하루 안 좋더라도 뭐 어떻다더냐 지금 좋으면 그만이지 하게 된다.


이 친구는 학기 초반에 날 만났을 때 한국 대학의 문제는 지나친 경쟁과 과열된 학업분위기라고 얘기했었다. 또 그는 학기 끝나기 1개월 먼저 떠나 아시아를 여행할 거라고도 했다. 그런데 그 일년이 지났을 때 그는 며칠밤은 샌듯한 핏기하나 없는 얼굴로 오늘밤까지 시험보고 내일 나 떠나 하고 말하면서 자기가 말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냐는듯 웃었다. 수많은 스쳐지나갔던 교환학생 중에서도 인상 깊은 친구였다. 혼자 생각했지, 복지국가에서 자란 아이들은 다 이럴까? 타인에 대한 조용한 배려와 따스한 친절 같은게?


이 일기의 제목은 그제야 생각난 그의 이름이다. /05.19.2013, 13.07.

 

그만 좋아하기로 정말 완전하게 결심했다. 어떻게 해볼 생각도 접었다. 너가 있을까 없을까? 너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관두기로 했다. 언젠가는 그때 그랬는데, 넌 어땠어? 하고 되물어볼 용기가 나에게 있다면 좋겠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할 땐 정말 있는 힘을 다해 좋아해서 그 마음의 크기에 나를 가눌 수가 없어 힘들었는데, 이젠 그 마음을 줄이는 것에 익숙해 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정도의 크기라면 감당할 수 있어 괜찮다.

만나게 되면 들뜰 마음을 미리 짓눌러야지, 다른 누군가가 오해하지 않도록 말하는 것에도 신중을 가하자. 들뜬 척하는 것 좋지만 들뜨진 말자고, 하루에도 서너 번씩 스스로를 다잡는다. 

꿀 같은 주말의 마지막 일요일, 귓가엔 터널을 통과하며 음악이 울리고 싹 접혀버린 마음, 이미 해야 할 일들만 곰 두어 마리처럼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니. 언제나 아까운 일요일 저녁은 시간 단위로 흘러가 내 마음 아프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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