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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er Dec 08. 2017

연하장

스물아홉은 생각했던 것보다 볼품없었다. x 통장잔액도 애인도 이력서에 한줄 적어내려놓을 만한 것, 남들 다 하나에서 두개 정돈 있는 듯한 면허, 그러니까 하다못해 운전면허도 없었다.

 

가진 것 없이 시간만 먹은 나는 당신의 기억속의 어떤 나보다 볼품없고 또 고약해졌을 거에요. 처음 만나는 자들에겐 상냥하고 똘똘한 언니/누나/후배 코스프레를 하고 그 뒤를 돌면 까탈스럽고 변덕스러운데 때론 폭언을 쏟아냈다 다음날엔 어머 내가 그런소릴했어? 입을 싹 닫는 그 와중에 게을러 토실토실해진 수염이 긴 고양이같은 내가 남았어요.


인내해야했던 입시의 끝에 기대했던 우린 존재하지 않았어, 환상 대신 또 다른 입시, 간간한 울음과 허무와 고민들로 채워졌던 십년이 지나갔어. 그 시간 동안 서로 다른 공간들-매번 환승해야했던 어느 지하철역과 식당과 도서관, 커튼 뒤 무대와 또다른 도서관, 암장과 개천 옆-을 공유했던 무수한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고,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고 부모가 되고 대리가 되고 창업을 하고 다시 학생이 되고 선생이 되었다는 발없는 소문들을 들었다) 그 끝에는 이 어설프고 볼품없는 스물 아홉이 가기전에 sns의 자아를 빌어 꼭 한번은 그들의 귀에 들릴 때까지 쓰고싶은 마음이 생겼다. 


엄마가 읽어준 동화책에 그래서 니 복은 누구 덕이냐? 물었다는 아비에게 제 덕이지요 한 막내딸처럼 살고자 했으나 내 것은 내 덕만은 아니었고 많은 이들로부터 받은 도움과 이해 덕분이었다.


볼품없는 스물아홉입네 푸념으로 시작하여 새해의 다짐을 적어놓으며 제 잘난맛에 끝내려했던 이것은 되려 이제까지의 내가 있기까지 그 순간마다 어떤 형태로든지 자리했던 많은 이들을 향한 고백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 연말에 나는 씁니다, 이것은 조금 이른 제 연하장입니다. 모자라고 부끄러웠던 나의 순간들에 존재하였던 그들에게 감사하였습니다.


그들의 길 위를 축복하며 더불어 이제는 그들의 애인과 가족의 행복 역시 빕니다. 스물아홉인지 모르고 시작했던 17년도, 그 해가 기운다. 

따뜻한 크리스마스와 연말, 조금은 또 미리,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2월 8일 ㄱㄷㅇ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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