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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메 Jun 25. 2019

캐릭터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넷플릭스 <블랙 미러 시즌2 - 3화 왈도의 시간>을 보고


2D 캐릭터를 좋아한다는 것은요


 나는 넓고 얕게 좋아하는 사람들(연예인)이 많은데, 그렇다 보니 심심찮게 마음 아픈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얕게 좋아한다고 그 슬픔의 깊이까지 얕을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결혼소식, 해체소식 등을 들을 때면 어김없이 내 깊은 슬픔을 만천하에 토로하고는 한다. '아! 이 덧없음! 난 다시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을 테야!'. 이런 내 얘기를 가만히 듣던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는 삶은 낙이 없지... 그래서 말인데.... 혹시 2D를 좋아해 볼 생각은 없니? 걔네들은 절대 마음 아프게 안 해'. 이 말을 들었을 때 머리에 불이 탁! 하고 켜졌다. 애니 캐릭터 덕질 세상의 입문이라니!


 사실 2D를 좋아한다고 하면 덕후보다 한 단계 더 깊은 차원의 덕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웹툰 시장이 날로 커져가고, 애니메이션 영화의 강세(토이스토리, 미니언즈 등)를 통해 보았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2D 캐릭터를 덕질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2D 캐릭터에게선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발생할 일이 없다. '사람'은 보이는 '캐릭터'와 '실제 사람'의 모습이 다를 수 있지만, '2D'는 '캐릭터'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감춰진 모습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2D 덕질의 단점을 꼽아본다면, 2D 캐릭터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없다는 것, 2D 캐릭터에게서 사인을 받을 수 없다는 것, 2D 캐릭터와 실제로 대화할 수 없다는 것 등이 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이슈가 없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지만, 실체가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교류를 할 수가 없다. 

이제 대세는 2D 캐릭터의 덕질인 건가요?

웹툰 작가와의 대화는 있지만, 웹툰 캐릭터와의 대화는 없다. 소설 작가와의 대화는 있지만, 소설 주인공과의 대화는 없다. 캐릭터가 하는 이야기는 결국 작가가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이나 웹툰을 연재할 때, 시간이 지나며 캐릭터의 성격이 구축되고 나면 작가가 함부로 캐릭터의 성격을 변형시키거나 죽이거나 할 수 없는 제약이 생긴다. 하지만 캐릭터를 창조한 작가가 절필을 한다면 더 이상 캐릭터를 만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작가가 절필한 캐릭터를 다른 작가가 차용해서 계속 쓴다면?



캐릭터의 주인은

누구인가 


<블랙 미러 시즌2 - 3화 왈도의 시간>은 힘을 가지는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이다. '왈도'라는 캐릭터가 세상에 나온 후 독특한 성격으로 인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주목을 넘어 캐릭터를 지지하는 팬덤이 형성된다. 하지만 회사는 이 캐릭터를 통해 다른 일을 하기를 원했고, 캐릭터를 움직여온 아버지인 제이미는 회사의 행보에 동의하지 못한다. 그래서 제이미는 외친다. "나는 왈도를 통해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자 사장이 말한다. 그럼 하지 마. 다른 사람이 하면 돼.


 그렇게 캐릭터를 움직여온 제이미가 사라졌음에도 캐릭터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큰 지지를 받는다. 


 나 역시 인스타툰이나 웹툰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작가가 구현해낸 캐릭터를 많이 만나고 좋아한다. 그들의 캐릭터가 그려진 물건을 사는데 돈을 쓴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고 응원하는 건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까, 캐릭터를 만들어내 준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대체하기 쉬운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내 자신이 캐릭터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쉽게 대체되지 않기 위해. <블랙 미러 시즌2 - 3화 왈도의 시간>을 보며 충격적이었던 건, 캐릭터와 함께 커온 제이미의 모든 것을 손바닥 뒤집듯 갈아치우던 모습 때문이었다. 뭐 굳이 네가 아니더라도 괜찮아. 그렇기에 이 회차에서 본 어두운 미래는, SNS로 인해 캐릭터가 실체보다 힘을 가지는 모습도, SNS가 장악한 세상도 아닌 사람을 부속 취급하며 필요가 없어지면 쉽게 갈아치우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가득 찬 세상이었던 것 같다.   


넷플릭스 <블랙 미러 시즌2 - 3화 왈도의 시간>을 보고 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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