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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메 Jun 24. 2019

지은 죄만큼 벌을 받는 세상

넷플릭스 <블랙 미러 시즌2 - 2화 화이트베어>를 보고


상상으로만 가능한

복수의 세계란


원수에게 복수하는 상상은 언제나 짜릿하다. 하지만 대게는 상상으로만 그치기에 짜릿하고 씁쓸하다.


내가 당한 것을 그대로 되갚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을 종종(usually...?) 마주할 때가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받은 것을 똑같이 되돌려주는 식의 복수를 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저 '내가 다음에 길에서 만나면 네가 한 행동을 그대로 돌려주겠어', '딱 네가 한 만큼만 벌을 받길 바라'라고 속으로 외칠뿐이다. 상대가 나에게 소리쳤다고 나도 함께 소리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렇다 보니 내가 해악을 입은 일에 대해서만큼은 특히나 더 관용이나 이해를 베풀기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시전하고 싶기 마련이다. 어차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직접, 당장 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 머릿속에서라도 시행하는 가장 강력하고 짜릿한 보복이란 상상. 그런데 사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받은 만큼 돌려주라는 강렬한 복수의 뜻이 아닌, 진짜 받은 만큼만 돌려주라는 뜻이라는 걸 알았을 땐 당황스러웠다. '눈눈이이'의 실제 뜻은 '눈을 다치면 눈만, 이를 다치면 이만 보복하라'는 것이라고 한다. 당한 만큼만 돌려주지, 그 이상의 감정을 담아 복수해선 안된다는 뜻. 오히려 사람들이 복수와 복수가 난무하며 서로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규정된 내용이 바로 '눈눈이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선으로 딱 나누듯 '네가 나에게 입힌 피해는 이만큼!'이라고 나눌 수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 상대가 나에게 물 싸대기를 날렸다면 나도 같이 물 싸대기를 날리면 동등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식을 살해한 살인범에게는 어느 정도의 벌을 내려야 적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항상 이런 문제는 쉽사리 규정 내릴 수 없고, 판단할 수 없어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통 나의 원수를... 갚을 수가 없지! 

나쁜 짓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데


특히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사람으로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진상 스토리를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의 예시로 자주 언급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하게'와 같은 느낌의 요구는 친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럴 때 내가 건네는 말은 "그래서 그 사람 어디서 일하는데! 내가 가서 지금까지 배웠던 진상 스킬로 고생시켜드릴라니까!'였다. 자신이 한 못된 행동을 그대로 당했을 때 그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돼서 했던 말이었다.


복수를 하는 건 복수를 하는 '나'에게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 복수가 돌고 돌아 결국 나에게 돌아와 복수를 시행한 자를 파멸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당장 내 분노에 내가 잡아먹힐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상황에서는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보복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상처 입고, 피해를 당했는데 '관용과 이해로 그대를 용서합니다'라 말할 수 있는 건 예수님이나 부처님 이외는 쉽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쁜 짓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예전엔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벌을 받는 게 당연하지. 그런데 요즘은, 나쁜 짓을 하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지만 그 벌을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너무 약하지도, 자신이 지은 죄보다 강한 것도 아닌 딱 지은 죄만큼의 벌은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그래서 <블랙 미러 시즌2 - 2화 화이트 베어>를 보며 통쾌한 감정만 들 줄 알았는데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어쩌면 이 불편함의 근원이 평생 정의될 수 없는 죄에 대한 정량적 처벌은 누가 규정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이 해소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눈이이'야 말로 유토피아 같은 세상에서만 지켜질 수 있는 법일지 몰라.


<블랙미러 시즌2 - 2화 화이트 베어>를 보고 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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