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시즌1>을 보고
어렸을 때 나는 꽤나 현실적인 아이였다. 하버드대학에 간다는 상상을 해본 적은 있어도(?), 내가 마법사라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해리포터나 타라덩컨 같은 책을 읽으며, 나도 소설책 속에 나오는 마법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나는 상상과 현실을 철저히 구분하는 사람이었다. 마법사 이야기를 좋아했어도 소설 바깥세상에서 마법사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은 전혀 열어두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공상을 시니컬하게 대하는 사람이었다. 그래, 어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일단 내가 사는 세상 주변에는 없어 (확신).
공상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상상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호들갑이 심해 손톱만 한 것을 보고 손바닥 만한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아이였다. 실제보다 과장되게 이야기를 할 때마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바로잡아주셨다. '네가 보기에는 그렇게 컸을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정말 그 정도로 컸니?, 무서웠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왜 무서워하지 않았니?'. 그러면 나는 답답해하며 이야기를 했다. '진짜 손바닥보다 더 큰 나비를 봤다니까요!' 물론 손바닥만 하지 않았다. '머리까지 물이 차서 그곳을 헤엄쳐 왔다니까요!' 물론 허리까지 오는 물의 높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렇게 진정성 있게 말하는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엄마의 태도가 속상했다. 상대가 나를 믿어주지 않으니 나도 더 이야기할 힘을 잃어갔다.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시즌1은 믿을 수 없는 사건들로 시작이 된다. 염력을 쓰는 아이의 등장, 실종된 아들이 전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고 이야기하는 엄마, 처음 들어 보는 괴물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까지. 이 모든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잃은 엄마가 '자신의 아들은 죽지 않았어요!'라고 하는 이야기를 믿을 사람은 없었고, '제 친구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초등학생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들은 없었다.
이런 기묘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져갈 수 있었던 건 괴물에게 잡혀간 윌에 대한 엄마의 믿음 때문이었다. 수많은 증거를 가져다줘도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음에도, 윌의 엄마는 아주 사소한 실마리 하나를 부여잡고 윌이 살아있다는 믿음을 놓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며 그녀의 첫째아들인 스티브도 엄마가 아들을 잃은 슬픔에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주변 사람들도 점점 그녀가 막내아들 윌을 잃은 슬픔에 정신이 오락가락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의 믿음은 맞았고, 그녀가 믿음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아들을 찾기 위해 애씀으로써 차차 아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에 다가가기 시작한다.
누군가를 믿는 건 어려운 일이다. 특히 나 빼고 모두가 아니라 할 때. 내가 아무리 대쪽 같은 사람이라도 대다수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면 한 번쯤은 흔들리게 된다. '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는데는 이유가 있을 거야. 괜한 고집부리지 말고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여보자.' 그래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일수록 대다수의 의견을 따라가게 된다.
믿음은 어려운 일이기에 단 한 사람이라도 믿는 사람이 있으면 그 이야기는 힘을 가진다. 그래서 <기묘한 이야기>시즌1의 힘은 아들을 전적으로 믿는 윌의 엄마 조이스가 진짜 주인공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도 조이스처럼 내가 괴물에게 끌려가 전구로 열심히 신호를 보내면 나를 구하러 와주시겠지?
와...주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