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좋아한다. 휴식과 휴양. 말만 들어도 평온해지는 단어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스마트폰을 하는 것이다. 온전한 휴식.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쉬는 시간. 내가 제일 사랑하는 시간이다.
그렇기에 나는 여행을 갈 때마다 항상 휴양과 휴식을 추구한다. 패키지여행도 아닌데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자유여행의 묘미란 모름지기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리라. 길을 가다가 오래 앉아 있고 싶은 바다를 만나면 그곳에서 2시간이고, 3시간이고 하염없이 앉아 있을 수 있는 여유. 카페에 들어갔는데 분위기도 좋고 마침 커피맛까지 좋으니 테이크아웃 대신 카페 안에 앉아 즐길 수 있는 여유. 나는 항상 이런 형태의 늘어지는 시간을 동경해왔고 추구하는 중이다. 숨 가쁜 현실에서는 맞이할 수 없는 늘어질 대로 늘어진 테이프가 될 수 있는 시간. 그런데 얼마 전 갔다 온 내 서울여행을 가만히 지켜본 친구가 한 마디 한다.
'이야. 대단해. 이 여름날 이게 소화할 수 있는 일정이야?'
그렇다. 나는 휴양을 추구하는 스파르타형 여행자였던 것이다.
휴양과 신선놀음을 추구하는
스파르타 여행자가 여행하는 법
왜 이렇게 여행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지 몰랐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항상 여행만 가면 힘이 들었다. 분명 휴양을 하고 오겠다는 다짐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여행만 가면 왜 이렇게 지치는 건지. 그래서 친구들에게 말했다. '나는 사실 여행 가려고 하면 너무 부담돼. 뭔가 여행 가면 너무 힘들어.' 그러자 친구들이 말한다. '당연한 거야. 네 계획을 봐. 이게 휴양이 되는 여행 계획인가. 네가 보여주는 건 항상 휴양을 하려는 사람의 일정표가 아니잖아'
그래서 찬찬히 내가 여행을 했던 기억들을 되짚어보았다.
- 서울여행 2일 차 일정(2019) : 땡스북스-당안리책발전소-북하우스디어라이프-종이잡지클럽-가가칠칠-마음스튜디오(MCC)-커먼그라운드-블루보틀-OR.ER.-바베양장(식사)-성수연방-마를리
- 강릉여행 무박 2일 일정(2018) : 무궁화호(22:29-06:40)-강릉역도착-중앙시장-대관령 양떼목장-강릉 커피축제-경포호수-경포해변-강문해변-안목해변-강릉시외버스터미널(막차 20:30)
- 대만여행 1일 차 일정(2018, 엄마와 함께 가기 때문에 러프하게) : 숙소-동먼시장-다안 산림공원-중정기념당-춘수당-임가화원-용산사-85도씨 커피-보피랴오 랴오지에-키키레스토랑-숙소
•(3일 차, 출국) 통일궁, 전쟁박물관, 인민위원회청사, 노트르담성당, 벤탄시장 본 후 공항으로
20살이 되고 난 후 나와 함께 여행을 다녔거나, 내 여행을 지켜본 사람들은 이제 나에게 여행에서 휴양을 포기하라고 했다. (네 입에서 이제 휴양 얘기 그만해) 나란 사람은 휴양 여행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새로운 곳에 간 만큼 볼거리들을 다 챙겨서 봐야 하는 욕심이 있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행 방법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이쯤 되니 나도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보고, 듣고 싶은 욕심이 많은 나는 여행에서 한 군데만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걸. 남들이 5박 6일이면 충분한 휴양 여행을 추구하려면 내게는 최소 한 달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행은 모름지기 고생해야 제 맛 아닌가요?
그래서 이제는 고삐를 풀고
본격 사서고생여행자가 되어보려 합니다
나는 패키지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양한 여행지를 갈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장점을 덮는 큰 단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여행스타일을 보면 어느 누구보다 패키지여행을 다니는 것처럼 다녀서 고민이 많았다. 이럴 거면 그냥 패키지여행 끊지 왜 자유여행한답시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는 거야. 어차피 다 갈 거잖아.
생각해보면 나는 여행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여유가 있는 사람을 동경해왔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움직임에서도 급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허둥거리지 않고 초조해하지 않기 때문에 기품이 있어 보인다. 이것을 여행에 적용하면 여기저기 발도장을 찍는 여행자가 아닌 생활자 같은 여행자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한정된 시간에 틈을 내서 왔기에 내 모든 시간을 활용해 내가 보고 싶었던 것, 먹고 싶었던 것을 봐야만 한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발바닥이 아파서 파스를 붙이고 다녔음에도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을 보면 나는 어쩔 수 없는 사서고생 여행자이다.
돌이켜보니 이런 나와 여행을 다니느라 친구들이 고생이 많았다. 이것저것 보고 싶은 건 많은데 길치인 나 대신 길을 찾아준 친구들, 내가 짠 계획에 내가 지쳐 울면서 발바닥이 너무 아프다는 나를 달래며 여행을 함께해준 친구들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많이 나아진 것 같은데 아직도 친구들이 혀를 내두르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 쉬는 것보다 보고, 듣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인가 보다. 하지만 언젠가는 돌아다니는 게 질려 진짜로 휴양을 하는 여행자가 될 날이 오겠지. 이렇게 말하지만 그럼에도 제일 중요한 건, 아직도 나는 휴양을 포기하지 않는 사서고생 여행자라는 사실이다.
언제나 이런 여행을 추구하고, 이번 방콕 여행에서 나는 다시 휴양에 도전해보려 한다! 물론 99%로 실패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