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아무튼, 잡지>를 읽고
내가 잡지를 처음 본 건 미용실에서였던 것 같다. 머리염색을 하거나 파마, 혹은 볼륨매직을 하려면 시간이 못해도 2시간 이상은 걸렸는데 그때마다 미용실에서는 나에게 쿠션 1개와 잡지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미용실에서 잡지를 보는 건 쉽지 않았다. 나는 눈 시력이 많이 나쁜데 미용실에서는 안경을 벗고 있는 상태라 잡지의 개미만한 글씨를 읽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미용실에서 주는 잡지의 두께는 두 손으로 들어도 무거운 무게다 보니 내 눈 앞에 잡지를 가져다 댈 수도, 기계에 잡혀있는 머리를 수그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이미지만 후루룩 보면서 넘기거나 진짜 흥미로운 인터뷰라면 눈을 최대한 찌푸려가며 그 인터뷰 하나에 모든 시간을 쏟기 일수였다.
나는 패션에도, 리빙에도 딱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터라 잡지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특히 잡지가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반드시 명품광고들이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기 마련이었는데, 나는 명품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 보니 잡지에 대한 흥미가 없었던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러다 잡지에 다시 관심이 생긴 건 대학교에서 봤던 대학내일 주간지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대학생 때가 아니라 고3 시절, 언니가 가끔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가져왔던 대학내일 주간지가 얼마나 흥미로웠는지 모른다. 그 이후 내가 대학에 간 뒤에도 대학내일만큼은 열심히 챙겨보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가끔 대학교에 가면 종종 대학내일을 챙겨 오고는 했다. 그런데 대학내일 종이주간지가 이제 사실상 폐간되었다. 아. 요즘 대학생들은 이제 대학내일이라는 걸 알지도 못하겠구나. 착실히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라떼는 말이야~
대학내일도 폐간되고, 서점에 갈 일도 없는 나는 잡지를 둘러볼 껀덕지가 아예 없어져버렸다. 이런 나에게 컨셉진 잡지구독은 죽어가던 잡지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잡지는 책이랑 좀 다르다. 에세이랑 비슷할 것 같지만 에세이 서적과도 좀 다른 느낌이다. 나는 내가 선택한 책을 한 번 펼치면 재미가 있든없든 무조건 다 읽어야 하는 강박이 있다. 그런 면에서 희한하게 잡지는 자유롭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달 받아보는 잡지는 읽을 때의 재미보다 잡지가 매달 처음 집 문 앞에 도착해서 택배상자를 깔 때, 그 쾌감이 진짜 좋다. '오늘은~무슨~ 주제일~까'라고 생각하면서 택배상자를 까고 부록으로 따라온 엽서랑 스티커를 확인하고, 이번호 제목을 확인하는 그 순간이 제일 재미있다. 그렇게 택배상자를 뜯어 엽서와 잡지 상태를 확인하고 나면 잡지는 침대에 던져둔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잡지를 읽고 싶어서 시키는 게 아니라, 택배상자를 까고 싶어서 잡지구독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달까.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되짚어보면 잡지계가 호황이었던 기억은 없다. 언제나 어렵고, 힘들고, 위기에 마주해 있었다. 이렇게 길게 위기에 직면해 있었는데도 아직까지 신생잡지들이 생겨나고 그 명맥을 어아가는 걸 보면, 잡지산업이 진짜 망할까 싶기도 하다.
위기설이 매년 빠짐없이 언급되지만, 그래도 '잡지'라는 분야가 완전히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기업들이 홍보 차원에서 기업자체 매거진을 많이 만들고는 했는데, 기업이 어려워질 때 제일 먼저 정리하는 게 잡지 파트였다고 한다. 하긴. TV, 아니 요즘 시대를 반영하지면 유튜브만큼의 파급력도 없고, 도달률도 낮은 잡지를 제일 먼저 정리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긴 하지.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있어야 하는 것들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굳이 없어도 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있으면 더 좋은 것들이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다. 이런게 모여서 인생의 재미 한 스푼을 만들어주니까 말이다.
먼 미래에 내가 할머니가 된 세상이 진짜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 이외의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이 되어버려 "라떼는 잡지랑 소설이라는 이야기집이 있었는데 말이야~"라고 말하게 되면 너무 슬플 것 같다.
나는 '그게 꼭 있어야 돼?'라는 말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망친다고 생각한다. 그게 없어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무언가는 아니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지만, 다만 있으면 더 좋은 것들, 더 알면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왜 기본만 챙기면서 살아가야 할까. '가성비'의 세계에서 벗어나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닌 무언가를 보고, 사고, 해보며, 우리는 조금 더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아무튼, 잡지> P.105
해외 잡지의 특성상 현지에서 발간되는 날짜보다 훨씬 뒤에나 한국으로 수입된다. 주문을 해놓고도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기다려서라도 샀다. 그 후에는? 택배가 도착한 당일, 신나게 포장을 뜯어, 잠깐 뒤적이며, 휘리릭 사진만 보고, 방치해둔다. 일본 잡지를 사서 내가 소유했다는 감각이 중요했을 뿐, 이 잡지에서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들여다보는 데는 별 소질이 없었다. 잡지를 읽었다거나 봤다고 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나는 잡지를 구경한 것이다.
<아무튼, 잡지> P.45
자신이 아직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자면, 무엇이든 '마감'과 관련된 일은 쳐다도 보지 않기를 바란다. 인생과 체력과 정신을 망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예전부터 잡지를 좋아했고, 늘상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조차 내가 하려는 일에서 90% 정도를 차지하는 게 마감일 줄은 미처 몰랐다.
<아무튼, 잡지> P.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