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뤼메 Apr 17. 2020

굳이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더 좋은 것들이 있는 세상

책 <아무튼, 잡지>를 읽고


잡지와의 첫 만남


내가 잡지를 처음 본 건 미용실에서였던 것 같다. 머리염색을 하거나 파마, 혹은 볼륨매직을 하려면 시간이 못해도 2시간 이상은 걸렸는데 그때마다 미용실에서는 나에게 쿠션 1개와 잡지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미용실에서 잡지를 보는 건 쉽지 않았다. 나는 눈 시력이 많이 나쁜데 미용실에서는 안경을 벗고 있는 상태라 잡지의 개미만한 글씨를 읽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미용실에서 주는 잡지의 두께는 두 손으로 들어도 무거운 무게다 보니 내 눈 앞에 잡지를 가져다 댈 수도, 기계에 잡혀있는 머리를 수그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이미지만 후루룩 보면서 넘기거나 진짜 흥미로운 인터뷰라면 눈을 최대한 찌푸려가며 그 인터뷰 하나에 모든 시간을 쏟기 일수였다.

나는 패션에도, 리빙에도 딱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터라 잡지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특히 잡지가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반드시 명품광고들이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기 마련이었는데, 나는 명품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 보니 잡지에 대한 흥미가 없었던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러다 잡지에 다시 관심이 생긴 건 대학교에서 봤던 대학내일 주간지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대학생 때가 아니라 고3 시절, 언니가 가끔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가져왔던 대학내일 주간지가 얼마나 흥미로웠는지 모른다. 그 이후 내가 대학에 간 뒤에도 대학내일만큼은 열심히 챙겨보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가끔 대학교에 가면 종종 대학내일을 챙겨 오고는 했다. 그런데 대학내일 종이주간지가 이제 사실상 폐간되었다. 아. 요즘 대학생들은 이제 대학내일이라는 걸 알지도 못하겠구나. 착실히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라떼는 말이야~

대학내일도 폐간되고, 서점에 갈 일도 없는 나는 잡지를 둘러볼 껀덕지가 아예 없어져버렸다. 이런 나에게 컨셉진 잡지구독은 죽어가던 잡지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잡지는 책이랑 좀 다르다. 에세이랑 비슷할 것 같지만 에세이 서적과도 좀 다른 느낌이다. 나는 내가 선택한 책을 한 번 펼치면 재미가 있든없든 무조건 다 읽어야 하는 강박이 있다. 그런 면에서 희한하게 잡지는 자유롭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달 받아보는 잡지는 읽을 때의 재미보다 잡지가 매달 처음 집 문 앞에 도착해서 택배상자를 깔 때, 그 쾌감이 진짜 좋다. '오늘은~무슨~ 주제일~까'라고 생각하면서 택배상자를 까고 부록으로 따라온 엽서랑 스티커를 확인하고, 이번호 제목을 확인하는 그 순간이 제일 재미있다. 그렇게 택배상자를 뜯어 엽서와 잡지 상태를 확인하고 나면 잡지는 침대에 던져둔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잡지를 읽고 싶어서 시키는 게 아니라, 택배상자를 까고 싶어서 잡지구독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달까.


없어도 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있으면 더 좋은 것들이 있는 세상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되짚어보면 잡지계가 호황이었던 기억은 없다. 언제나 어렵고, 힘들고, 위기에 마주해 있었다. 이렇게 길게 위기에 직면해 있었는데도 아직까지 신생잡지들이 생겨나고 그 명맥을 어아가는 걸 보면, 잡지산업이 진짜 망할까 싶기도 하다.

위기설이 매년 빠짐없이 언급되지만, 그래도 '잡지'라는 분야가 완전히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기업들이 홍보 차원에서 기업자체 매거진을 많이 만들고는 했는데, 기업이 어려워질 때 제일 먼저 정리하는 게 잡지 파트였다고 한다. 하긴. TV, 아니 요즘 시대를 반영하지면 유튜브만큼의 파급력도 없고, 도달률도 낮은 잡지를 제일 먼저 정리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긴 하지.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있어야 하는 것들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굳이 없어도 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있으면 더 좋은 것들이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다. 이런게 모여서 인생의 재미 한 스푼을 만들어주니까 말이다.

먼 미래에 내가 할머니가 된 세상이 진짜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 이외의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이 되어버려 "라떼는 잡지랑 소설이라는 이야기집이 있었는데 말이야~"라고 말하게 되면 너무 슬플 것 같다.



나는 '그게 꼭 있어야 돼?'라는 말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망친다고 생각한다. 그게 없어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무언가는 아니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지만, 다만 있으면 더 좋은 것들, 더 알면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왜 기본만 챙기면서 살아가야 할까. '가성비'의 세계에서 벗어나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닌 무언가를 보고, 사고, 해보며, 우리는 조금 더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아무튼, 잡지> P.105

    

해외 잡지의 특성상 현지에서 발간되는 날짜보다 훨씬 뒤에나 한국으로 수입된다. 주문을 해놓고도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기다려서라도 샀다. 그 후에는? 택배가 도착한 당일, 신나게 포장을 뜯어, 잠깐 뒤적이며, 휘리릭 사진만 보고, 방치해둔다. 일본 잡지를 사서 내가 소유했다는 감각이 중요했을 뿐, 이 잡지에서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들여다보는 데는 별 소질이 없었다. 잡지를 읽었다거나 봤다고 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나는 잡지를 구경한 것이다.

<아무튼, 잡지> P.45 


자신이 아직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자면, 무엇이든 '마감'과 관련된 일은 쳐다도 보지 않기를 바란다. 인생과 체력과 정신을 망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예전부터 잡지를 좋아했고, 늘상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조차 내가 하려는 일에서 90% 정도를 차지하는 게 마감일 줄은 미처 몰랐다. 

<아무튼, 잡지> P.116


매거진의 이전글 제 여행테마는 언제나 휴양이라구요, 아시겠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