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맞추며 인생을 배워요
작년에 안경을 새로 맞췄다. 안경을 다 맞추고 나서 집에 가려고 할 때 안경점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혹시나 안경이 틀어지거나 안경테를 조이고 싶으면 언제든지 편하게 들리라고.
안경을 맞추고 1년이 되어갈 때쯤 안경테의 조임이 헐거워짐을 느꼈다. '왜 이렇게 헐거워지지'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안경점을 찾아가 조여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안경을 쓰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모든 일은 당장 큰일이 생기는 게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법.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내 안경을 보시더니 "안경테가 왜 이렇게 헐거워졌노. 이거 그대로 놔두면 나중에 아예 나사 풀린다! 얼른 쪼이던가 해야겠는데?"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계속 마음 한 켠에 담아두기 시작했다. '안경테를 쪼여야 될 것 같은데... 그냥 이참에 아주 작은 드라이버를 사 버릴까..?'. 하지만 안경테를 조이는 일은 계속해서 미뤄졌다. 혹시나 안경점 근처를 가게 되는 날에는 렌즈를 껴 안경이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굳이 안경테 때문에 외출을 하는 건 귀차니즘의 성미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침 안경을 끼고 외출을 하던 날 안경점을 지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안경점을 지나쳤다가 '어? 안경테 쪼여달라고 해볼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렇게 드디어 마음 한 켠을 계속 불편하게 하던 일을 해결하기 위해 안경점에 입성하게 되었다.
사실 항상 무언가를 구매하러 들리던 곳에 아무것도 사지 않고 '요청'만 하러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그 짧은 순간 온갖 생각이 들었다. '언제든지 편하게 들려달라는 말이 인사치레로 하던 말은 아니었을까, 상대는 빈말이었는데 나만 진담으로 받아들인 게 아닐까, 여기서 안경테 산 거 증명을 해야 하나? 휴대폰번호 알려주면 증명이 되나?' 라고 온갖 수를 계산하며 안경점에 들어가 사장님께 말했다. "저기... 안경테가 헐거워져서요..." 그러자 사장님은 '여기서 안경 사셨나요?'라는 질문 하나 없이, "안녕하세요? 안경테가 조이고 맞추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니까 저기 앉아서 기다려주시겠어요?"라고 말하시며 내 안경을 가져가셨다.
몇 분 후 사장님은 새로 조인 내 안경을 가져오셨다. 그리고 내 얼굴에 안경을 5번이나 썼다 벗겼다를 반복하며 안경테 끝부분부터 콧대 부분까지 모든 것을 조정해주셨다. 안경을 자꾸 올려 쓰는 나에게 인상이 흐려 보이지 않게 안경을 쓰는 법부터 겨울철에는 안팎 온도차가 심해 안경테 나사가 종종 헐거워진다는 설명도 덧붙여주셨다. 그리고 나는 새로 태어난 안경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 '직업'이나 '일'에 관한 주제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일'에 대한 주제가 화두로 떠오를 때 대부분 큰 한숨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하는 요즘. '일'을 잘한다는 건 뭘까, 즐겁게 '일'을 한다는 것은 뭘까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된달까. 이렇듯 '일'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질 때면 종종 안경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안경점 사장님을 보며 일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내가 몇 년 점 이 안경점에 처음 방문했던 모습을 지금도 볼 수 있는 '일관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꼈다. 예전에는 막연히 재밌고 멋있는 모습들을 동경했는데 지금은 시간이 흐름에도 변하지 않는 모습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여기 안경점 사장님부터 20살 때부터 지금까지 시켜먹고 있는 족발보쌈 사장님까지. 장사를 하며 온갖 모습의 사람을 만났음에도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했을까.
이런 분들을 보며 느낀다. 경험치도 작은 내가 벌써부터 '과거의 발랄한 나는 죽었어!'라고 외치는 것이 얼마나 어린애 같은 모습인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