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밴드라 감사합니다
언제부터 '잔나비'라는 밴드를 알게 되었는지 정확한 기억이 없다. 사실, 잔나비라는 밴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먼저 존재했다.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재킷 사진을 보자마자 '이 가수는 내 스타일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노래를 부를 리가 없다'라고 판단했다. 상큼하고 발랄한 인디 노래가 아니면 인기차트 100만 듣는 나이기 때문이다. 몽환적인 노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켓 사진을 보니 바로 감이 왔다. '뭔가 오혁, 새소년과 같은 느낌의 비트의 노래를 부를 것 같은 밴드'라는 느낌이 왔다.
회사에서 페스티벌을 준비하며 가수 리스트업을 할 때도 잔나비는 리스트에도 넣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페스티벌에 오는 사람들이 하도 댓글에 '잔나비 불러주세요'라고 하길래, 도대체 어떤 가수이길래 이렇게 사람들이 댓글로까지 찾나 싶기도 했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2018 GMF(그랜드 민트 페스티벌)는 동시간대에 스테이지별로 다른 무대가 꾸며지기 때문에 어떤 가수의 노래를 들을지 선택해야 했다. 그때 나는 '잔나비'가 내가 좋아하는 '스윗소로우'와 같은 시간대에 무대를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 미련 없이 스윗소로우의 무대를 보러 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나는 잔나비라는 밴드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 바보! 그렇게 노래를 주구장창 들었으면서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어!
회사 사무실에서 '유튜브 노래 모음'노래를 자주 듣는 편이다. 멜론 차트로만 노래를 듣자니 같은 노래가 자꾸 반복되는 느낌이 강해, 좀 새로운 노래를 듣고자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배경음악에 신경 쓰지 않고 일을 하다 어느 순간, '어? 이거 무슨 노래지?'라는 자각이 들 때가 있다. 처음에는 '노래 좋다'라고 생각하며 지나갔는데, 매일마다 '어? 이거 무슨 노래지?'라는 자각이 반복되자, 비로소 나는 노래 검색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내가 매일 '노래 좋다'라고 말한 모든 노래가 잔나비의 노래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내가 좋다고 생각했던 노래들로는
- 잔나비 <She>_디지털 싱글 (2017)
- 잔나비 <로켓트>_디지털 싱글 (2014)
- 잔나비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_정규1집 타이틀곡 (2016)
- 잔나비 <몽키호텔>_정규1집 수록곡 (2016)
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매일 같은 노래를 들으면서 '이거 좋네?'라는 말을 반복했던 노래들이라고나 할까.
잔나비라는 밴드에 대한 내 편견이 완전히 무너진 후, 나는 '잔나비'라는 밴드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밴드 명칭인 잔나비는 우리나라 순 우리말 '원숭이'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밴드를 구성하는 5명(최정훈_보컬 / 김도형_기타 / 유영현_키보드 / 장경준_베이스 / 윤결_드럼)이 모두 원숭이 띠인 92년 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자연스럽게 원숭이의 순 우리말인 '잔나비'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
옛날에 재빠른 동물을 가리켜 '나비'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나비'라는 명칭으로 불린 동물로는 원숭이와 고양이가 있다. 그런데 '원숭이'와 '고양이'를 모두 나비라고 부르면 구분하기가 어려우니, 원숭이의 털이 잿빛인 걸 보고 원숭이를 잔(잿빛 털)+나비(재빠른 동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이름을 가진 잔나비 밴드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건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데뷔는 3인조로 <로켓트>라는 노래와 함께 2014년에 하였지만, 5인조의 모습을 갖춘 건 2015년, 정규 1집이 발매된 건 2016년이다. 나 역시 그랬듯 사람들이 잔나비의 노래를 자각하기 시작한 건 대부분 1집 타이틀 곡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서서히 사람들이 '이 노래 누가 부른 거지?'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게 정규 1집을 통해서이니, 2017년부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앨범자켓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잔나비가 추구하는 음악은 '빈티지 팝'이다. 마침 2019 트렌드로 뽑힌 뉴트로(NEW+RETRO)를 청각적,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밴드랄까.
이처럼 뒤늦게 주구장창 잔나비 노래를 듣고 있는 나에게 어느 날 친구가 연락을 해왔다. 앞, 뒤 미사여구 아무것도 없이 대뜸 나에게 '잔나비 좋아해?'라고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지만, 당당히 대답했다.
"좋아해!!!!!!!!!! 나 잔나비 좋아해!!!!!! 완전 좋아해!!!! 그런데 왜?"
그러자 친구가 답했다. '내 주변에 잔나비를 아는 사람이 없는데, 역시 넌 좋아할 줄 알았어! 괜찮으면 잔나비 콘서트 갈래?'. 이 질문에 망설일게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그렇게 오는 4월, 잔나비 전국투어 콘서트 '투게더'에 갈 예정이다.
사실 이 콘서트 티켓을 구매할 때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나 역시 주변에 잔나비를 아는 사람이 없길래, 티켓팅이라고 하지만 다른 가수들만큼 경쟁이 심하겠냐는 생각으로 설렁설렁 티켓팅 시간을 기다렸다. 그렇게 티켓팅창이 오픈되고 나서도 설렁설렁 구매창에 들어갔는데, 표가 매진인 것이다. 친구 역시 매진된 창만 뜬다고 했다. 그날 친구와 얼마나 날뛰었는지 모른다. '아니, 내 주변에는 아는 사람이 없는데 왜 매진이냐고!!!'
그렇게 콘서트를 갈 수 없나 싶었는데, 3일 뒤 다시 들어가니 표가 좀 풀려있었다. 그래서 가게 되었죠! 잔나비 콘서트!!
이제 곧 잔나비는 '나만 아는 밴드'에서 '모두가 아는 밴드'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사람 마음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유명해졌으면 하면서도,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런데 이제 <나 혼자 산다> 출연까지 확정된 마당에, 나만의 가수로 남아 달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렇게 좋아하는 잔나비가 다른 가수들이랑 뭐가 다르냐고? 그렇다면 나는 이때까지 차트를 석권하던 노래들과는 분명 뭔가 다른 노래라는 점에서 추천을 한 번, 마음을 때리는 가사가 담긴 노래를 부른다는 점에서 또 한 번 추천을 해 주고 싶다. 아, 진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진짜 좋다니까요. 처음엔 약간 '좀 느끼해 보이고, 난해한 노래를 부를 것 같은 느낌'이긴 한데, 노래를 들어보면 그렇지 않아요. 이것이 바로 반전매력이랄까요. 신나고 경쾌한 노래 많이 부르는 밴드라니까요. 그리고 노래도 노래이지만, 진짜 진가는 페스티벌에서 발휘될 것 같은 느낌의 밴드랄까요. 궁금하면 얼마 전에 발매한 정규 2집 <전설>을 들어봐도 좋지요.
자꾸 구구절절해지니, 이쯤에서 이번 2집 중에 제일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를 적으면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나의 기쁨 나의 노래_정규2집 전설 수록곡>
별 볼 일 없는 섭섭한 밤도 있어요
오늘도 그런 밤이었죠
창을 열고 세상 모든 슬픔들에게
손짓을 하던 밤
노래가 되고 시가 될 수 있을 만큼
그만큼만 내게 오길
뒤척이다 잠 못 들던 밤이 있는 한
닿을 수 있어요
나의 기쁨
나의 노래되어 날아가
거리를 나뒹구는 쉬운 마음 되어라
이 삐걱이는 잠자리가 나는 좋아요
제 맘을 알 수 있나요
버려지지 않고서는 가질 수 없는
마음이 있어요
나의 기쁨
나의 노래되어 날아가
거리를 헤집으며 텅 빈 눈과 헛된 맘과
또다시 싸워 이길 나의 기쁨 나의 노래야
거리를 나뒹구는 쉬운 마음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