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사님들! 제발 저의 사랑을 받아주세요.
어떤 방송작가분이 쓴 섭외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암 예방을 위해 말린 과일을 먹는 사람을 섭외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무려 2-3일 만에.
1. 암에 걸린 분들 중
2. 현재는 암을 극복하였고
3. 암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말린 과일을 먹었기 때문인 사람을
4. 2-3일 만에 찾아내라!
이 글을 읽고 있는데 뭐랄까. 이런 것을 두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구나 싶었다. 내가 하는 섭외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그래도 내가 하는 섭외의 대부분은 문화와 관련된 클래스를 진행해줄 사람, 강연을 진행해줄 사람을 섭외하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나에게는 쉽지가 않다. 입사와 동시에 지금까지 꼬박 1년을 섭외에 매달렸는데 아직까지도 제일 힘든 일 중 하나가 '섭외'이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섭외를 진행해보았지만, 내가 진행하는 섭외 방식이 맞는 것인지 확신이 없다. 다른 회사를 다니며 섭외일을 해본 적도, 섭외를 당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첫 회사인 이곳에서 내가 섭외 방법이라고 배운 것은 "연락처를 찾아내고 섭외가 되도록 연락을 하라. 그리고 섭외비는 미리 말하지 마라"였다. 내가 섭외를 진행하기 위해 배정되는 섭외비는 항상 턱없이 부족했고, 이를 드러낼 경우 상대방이 지레 거절을 하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단 물꼬를 튼 후 감성에 호소하라는 것이 섭외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가이드라인으로 믿고, 이때까지 이 말에 따라 섭외를 진행해 왔다.
이 날도 여느 때처럼 섭외메일을 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나의 섭외메일에 답장을 한 것을 발견했다. 섭외요청에 응한다는 말을 기대하며 메일을 열었다. 그런데 그 메일에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짚어주는 메일이 적혀 있었다.
ㅇㅇ 담당자님 안녕하세요?
우선 제 작업에 관심 가져 주시고 정성스러운 메일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해 보았고, 2가지 이유로 프로그램 진행이 어려울 듯해요!
첫 번째는 이미 하는 일이 너무 많아 더 이상 추가 작업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강연료가 적혀있지 않아 본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좋은 취지일지라도 섭외비와 관련된 부분이 적혀있지 않다면 제 시간을 써도 되는 일인지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지 않으셨음을 느끼게 됩니다. 넓은 이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 메일을 받고 나서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씨뻘개지는 느낌이었다. 부끄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섭외비가 제일 중요한 것임에도 일부러 섭외비를 말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거의 섭외진행이 끝난 후 거절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야 섭외비에 대해 능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것처럼 '설마 섭외비 때문에 거절하진 않겠죠? 저희 프로그램 취지가 이렇게 좋은걸요! 조금만 양해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계속 섭외일을 담당하여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자각했다. 내가 일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러나 모두가 문제 삼지 않아 나 역시 문제 삼지 않았다. 아무도 문제 삼지 않으니 괜찮다고 자위했다.
문제 삼지 않는다고 그 일이 괜찮은 것이 결코 아니다. 그저 상대방의 배려로, 혹은 상대방 역시 잘 모르기에 덮고 넘어가는 것일 뿐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섭외와 관련된 일들은 쌍방의 합을 요하는 일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만큼, 상대방이 내 요청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기 위한 시간과 정보를 주어야 한다.
이런 일을 겪은 후, 나는 내가 섭외한 연사를 최대한 배려하고자 노력한다. 이런 나를 보며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돈을 주며 일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대부분은 내가 배려하는 만큼 상대방도 나를 배려해준다. 그리고 돈을 주고 일을 요청하는 것이지만, 내가 요청한 메일에 답장을 주고 함께 일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면 그것만으로 상대방을 배려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와 함께 일하면 부족한 부분이 많을 수도,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이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메일에 응해주고, 함께 프로그램을 완성 해나 가준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더 이상 부끄러운 담당자가 되지 않으려고 한다. 나와 함께 일을 했을 때 좋은 추억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쁜 기억을 남겨주는 담당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