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일록'의 생존을 위한 투쟁에 대하여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 속 반유대주의에 대하여

by 뚠구름잡는얘기


타자에게 무조건적인 조롱과 멸시를 받는다면 어떠한 느낌이 들까. 그리고 그러한 조롱과 멸시가 자신이 갖고 있는 다양한 정체성 중 하나와 연관되어 나타난다면 이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해야 할까. 우리는 역사 속에서 종교를 이유로 타인에 대한 조롱과 멸시, 박해를 가했던 여러 사건들을 만날 수 있다. 서양의 역사 속에서는 15세기부터 시작된 ‘마녀사냥’이라는 이름 하에 진행되었던 이교도들에 대한 박해가 있고, 동양의 역사 속에서는 18~19세기 진출한 서양의 선교사들에 대한 박해가 있을 것이다. 타자를 박해하던 이른바 주류계층들은 종교를 ‘우리’와 ‘타자’를 구분하는 경계로 삼았고, 이러한 경계는 다른 어떠한 사상과 문화보다도 강력하게 작용하여 그들과 우리를 구분하는 잣대로 작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적 경계는 경계 안의 사람들에게 경계 밖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멸시를 여과 없이 표출할 수 있도록 했다. 종교는 종교 자체가 갖고 있는 교리와 정신과 괴리되어 비이성적 행동과 결과를 낳는 괴물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우리는 이러한 종교적 기준과 잣대를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선명하게 살펴볼 수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등장하는 인물인 ‘샤일록’은 유대교도로 베니스의 주류계층, 이른바 인사이더들이 믿고 있는 그리스교도의 관점에서는 이방인이었다. 이방인이었던 ‘샤일록’은 그리스교도인들에게 지속적인 멸시와 조롱을 받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었다. 이러한 이방인들에게 하루하루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고 현실이었다. 베니스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반유대주의는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었고,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반유대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은 극중 안토니오였고, 유대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은 ‘샤일록’이었다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의 영화 『베니스의 상인』 中 샤일록 역의 '알 파치노'


반유대주의와 안토니오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을 살펴보면, 유대인들에 대한 베니스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을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극중에서 안토니오가 바사니오의 결혼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샤일록을 찾아가 고리대를 빌리는 장면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샤일록은 자신을 찾아온 안토니오에게 표면적으로 “바사니오는 좋은 분이죠”라며 예의를 차린다. 하지만 안토니오가 샤일록을 대하는 모습은 고리대를 빌리러 온 채무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안토니오는 “저 말을 들었나, 바사니오? 악당도 제 잇속을 위해서라면 성서를 인용한다네. 나쁜 놈이 성서의 증거를 들이대는 건 악마의 웃음이나 같은 걸세. 겉보기와 다른 썩은 능금과 같다네!”라는 표현을 통해 샤일록을 조롱한다. 그리고 “난 이후로도 그렇게 욕을 하고 침을 뱉고 발길로 찰 거요. 이 돈을 빌려주더라도 행여 친구에게 빌려준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시오!”라는 말로 앞으로도 자신의 샤일록에 대한 멸시와 조롱이 계속될 것임을 전한다. 이러한 안토니오의 샤일록에 대한 태도와 조롱은 베니스의 사회에 만연한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과 박해의 모습을 여실히 나타낸다. 이는 안토니오와 관련된 친구들이나 인물들에게도 유대인에 대한 대우가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사실임을 알 수 있다. 극중 인물들은 샤일록이나 샤일록의 딸 제시카를 지칭할 경우에 그들의 이름보다는 ‘유대인’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며, 그들의 개성이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유대인’이라는 특정한 단어를 통해 표현한다. 이를 통해 베니스 사회의 사람들은 종교적 구분, 그리스교도인과 유대인이라는 범주를 자신들의 삶 속에서 우리와 타자를 구분하는 철저한 경계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베니스 사회를 주도하는 공작에게서도 반유대주의적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샤일록과 안토니오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지는 법정에서 공작이 샤일록을 표현하는 대사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공작은 “참 안되었네. 자네에게 소송을 건 상대방은 목석같은 인간, 인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자니 말일세.”라는 표현을 통해 샤일록을 비하한다. 이처럼 반유대주의는 베니스 사회의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벽이었다. 안토니오는 그들의 사회를 대표하는 한 인물이었으며, 베니스 사회에는 수백, 수천 명의 안토니오가 살아가고 있었다.


반유대주의 속 생존을 위한 투쟁


샤일록은 베니스 사회에서 고리대금업에 종사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유대교도이며, 철저하게 이방인으로 취급을 받으며 베니스 사회 속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며 살아간다. 유대교도들이 고리대금업과 같은 일에 종사했던 이유는 당시 유럽사회에 만연한 반유대주의와 관련이 깊다. 유럽 사회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은 종교적 이유로부터 출발했는데, 이는 예수님의 죽음이 유대인과 관련이 깊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유럽 사회에서는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와 멸시의 차원에서 그들이 농업이나 기타 생산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것을 철저하게 배척했다. 유대인들은 유럽인들, 특히 그리스교도인들이 금기하거나 배척하는 직업인 고리대금업과 같은 직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 샤일록도 이러한 그리스교도인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규칙 속에 충실히 살아간 인물이었다. 유대교도에게 안토니오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인물이었다. “그리스교도인 저놈은 정말 밉상이란 말이야. 그뿐인가, 어리석은 자비심을 베풀어 무이자로 돈을 대부해 주어 베니스의 우리 대금업자들의 이자율을 떨어뜨리니 더욱 미워 죽겠다구!”라는 샤일록의 대사는 안토니오의 유대인들에 대한 위협을 나타낸다. 그리스교도들에 의해 고리대금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들, 이제는 이러한 사회적 관습과 규율을 만들어낸 그리스교도에 의해 자신들의 직업과 생계가 위협받는 유대인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유대인들은 더욱 돈에 대한 집착을 나타냈다. 반유대주의가 팽배한 사회 속에서 그들은 돈마저 없다면 완전한 타자로 전락하여 베니스 사회의 버림을 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샤일록이 유독 돈에 집착하고 자신들의 집단을 배신하고 돈을 갖고 떠나버린 딸에 대한 저주를 퍼부은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유대인들을 타자로 만들어버린 그들에 대하여 분노와 절규를 표출한 샤일록은 수많은 억압과 박해, 멸시를 받아왔던 유대인들을 대표하는 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샤일록이 안토니오에게 칼을 겨누고 1파운드의 살점을 도려내고 했던 것은 개인적 차원에서의 분노와 정서의 표출보다는 유대인들이 반유대주의가 팽배한 사회에 겨눈 생존의 투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의 영화 『베니스의 상인』 中 샤일록 역의 '알 파치노'

샤일록의 절규


반유대주의가 팽배한 사회에 생존을 위한 투쟁의 칼날을 제시했던 샤일록, 샤일록으로 대표되는 유대인들은 결국 재판에서의 샤일록이 패배하고 개종을 서약함으로써 좌절을 겪게 된다. 자신들을 선으로 규정하고 유대인들을 개종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던 그리스교도인들, 그들은 자신들의 자비와 관용이라는 껍데기뿐인 종교적 정신을 동원하여 샤일록을 철저히 짓밟았다. 자비와 관용을 외친 그리스교도인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무자비하고 무관용적이었으며, 이중적이며 위선적이었다. 그들은 자비롭고 관용스러워야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한 자신들의 내면의 결함에서 비롯된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 대상은 이교도이자 타자였던 샤일록이었다.
어릴 적 우리가 배운 『베니스의 상인』은 악덕한 상인 샤일록에 대한 미덕의 승리로 배웠다. 하지만 오늘날 다시 읽은 『베니스의 상인』은 과연 누가 악덕이고 누가 미덕인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베니스의 상인』에는 다음과 같은 샤일록의 대사가 나온다. “우리 동족을 멸시하고 내 거래를 방해했겠다. 친구들은 떼어 놓고 원수들을 충돌질 시켰지. 대체 무슨 까닭으로? 내가 유대인이기 때문이지! 그래, 유대인은 눈이 없나? 유대인은 오장육부의 육체와 감각이, 감정과 정열이 없나?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 같은 연장에도 다치고, 같은 병에 걸리고 같은 약에 낫고, 똑같이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워. 어디가 예수쟁이들과 다르단 말인가!”. 샤일록의 절규가 누가 악덕이고 미덕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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