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린 거야!
오늘 저 기자 파마하고 나왔네!
"습도 높은 날 아침부터 땀 흘린 거야!"
아침 뉴스에 매번 나오는 기자가 최근 장마 소식으로 평소보다 시간이 밀려서 출근 시간에 쫓겨 못 보다가 오늘은 평소의 시간에 등장했다. 경제 소식을 전하는 것을 본 아내가 오늘 저 기자 파마하고 나왔다고 보라고 한다. 그래서 쓱 쳐다보니 파마를 한 것은 아니고 습도가 높은 날 땀을 흘렸는지 머리가 곱쓸거리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아내에게 내 머리를 보라고 했다. 샤워하고 잠시 청소기를 돌렸더니 땀이 터져서 내 머리도 파마한 사람처럼 꼬불랑 거리고 있었다. 저 사람도 아침부터 땀 흘리며 힘들게 출근했구나 싶다.
"파마하셨나 봐요?"
습도가 높은 날씨에 점심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파마했냐는 질문을 받는다. 오래 얼굴을 본 직원들도 가끔 습도가 높은 날 만나면 파마를 했냐고 묻더니 오늘이 그날인가 보다. 이렇게 습도가 높은 날 땀까지 흘리면 머리가 더욱 빠글빠글 거린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나 모양으로 웨이브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분명 단점이다. 그냥 제멋대로 구불구불하다. 머리가 곱쓸거리는 직원에게 원래 곱슬 머리냐고 물어보니 반대로 파마했다고 한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녀!"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니라고 하셨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일명 스포츠머리라는 스타일을 유지했고 대학에 가서 드디어 머리를 조금 자유롭게 길렀다. 머리는 길이가 길어질수록 더욱 뽀글거렸고 그 곱슬머리를 부모님은 탐탁지 않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하긴 부모님은 명절마다 누나와 조카들도 모두 머리를 짧게 자르라고 하셨던 것 같다. 누구든 긴 머리로 돌아다니는 것을 무척이나 못마땅해하셨다. 팔순이 넘으신 분들이라 긴 머리에 대한 로망보다는 산업화에 적합한 짧은 머리가 보기 좋은 세대가 아닐까 이해하고 넘어간다.
폭력이 일상이던 야만의 시대 p.74
“젊어서 진보 아니면 가슴이 없는 것이고, 나이 먹고도 보수가 안 되면 머리가 없는 것”이란 말이 있다. 이 잣대를 들이댄다면 난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난 나이가 들면 오히려 진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진보적 삶은 이 시대의 대세인 신자유주의적 규범에 저항하는 것이다.
《진보적 노인》(이필재, 몽스북, 2021.04.10.)
아내는 태어날 때부터 갈색 머리인데 등교시간마다 머리 염색한 것으로 오해를 받았다고 한다. 나도 태어날 때부터 반곱슬머리인데 파마을 한 것으로 오해를 받는다. 뭐 딱히 의도하지 않은 겉모양에 억울한 감정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습도가 높은 여름철 내 마음과 다르게 관리가 어려운 머리를 쉽게 관리하는 방법을 묻다 역시 짧게 잘라야 해결이 되는 것인가 원점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이 파마했나고 물어보시면 홍시맛이 나서 홍시맛이 난다고 대답한 〈대장금〉의 어린 장금이의 답답함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