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추운 겨울이 어떨까 싶다
집에 에어컨이 고장 나서 힘든 얼굴로 출근한 옆자리 직원이 한숨을 쉰다.
"에어컨이 고장 나니 잠을 못 자겠어요."
갑자기 에어컨이 고장 났다는 옆자리 직원이 잠을 못 자겠다고 하소연한다. 에어컨 수리 예약을 신청했지만 다음 주에나 차례가 올 것 같다는 답변을 받고 어떻게 해야 할지 난처해한다. 자동차의 에어컨이 고장난지 2주째이지만 부품이 수급되었다는 소식은 여전히 없고 나도 무더위에 차를 운전하고 있는 입장에서 피할 수 없는 더위로 인한 괴로움이 느껴진다.
"오늘 점심은 냉면 어때요?"
피곤에 지친 동료와 점심 냉면을 먹기로 한다. 냉면이 나오기 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밤에 자다가 흘린 땀으로 깜짝 놀라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도 에어컨이 없었다면 밤새 뒤척이지 않았을까 싶다. 동료에게 잠시 본가로 들어가라고 했더니 본가는 아내가 불편해하고 또 아이가 심심해한다고 한다. 그리고 처가로 들어가기에는 이제는 떨어져 사는 게 적응된 장모님이 불편해하신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휴가를 내고 여행을 떠나거나 집 근처의 만화방이나 찜질방을 추천해 본다. 나도 출퇴근 시에 플라스틱 생수병을 얼려 다니는데 이 사람도 2리터 얼린 생수병을 안고 잠든다고 하니 다들 무더위를 대처하는 방법은 비슷하다.
"열대야가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뉴스에는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고 소식을 전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욱 더울 것이라는 기상예보가 전혀 반갑지 않다. 에어컨이 없던 어린 시절은 어떻게 보냈더라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선풍기에 의지하거나 그냥 물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피해보려고 노력한 기억밖에 없다. 여름에 보일러가 고장 나고 겨울에 에어컨이 고장 나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발생할 확률이 높지 않다. 무더위에 출근하는데 길을 막고 도로포장을 한다고 열기를 내뿜으면서 작업을 한다. 출근길 정체에 그 옆에 창문을 열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나도 작업하시는 분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있다. 내일은 저분들처럼 수건을 목에 두르고 출근해야겠다 다짐한다. 아침 찌는듯한 무더위에 운전을 하다 보니 차라리 자동차는 겨울의 히터가 고장 나는 게 여름에 에어컨이 고장 나는 것보다 낫다는 결론이다.
에필로그_생면부지의 동병상련 p.253
아등바등 간신히 오늘을 보내봤자 오늘을 쏙 빼닮은 내일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어쩐지 이번 생에는 갑갑한 현실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 같고, 사실 다음 생이라고 이보다 나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생업으로 심신을 하얗게 태운 보통 직장인이 하루를 반추한 결과가 고작 이 모양일 때, 어느덧 ‘나만 이렇게 사나’ 싶은 짜증과 불만이 밀려올 때, 똑같은 소릴 읊조리며 옆에 쪼그려 투덜거리는 생면부지의 동병상련이 되고 싶다. ‘그래도 오늘까지 별 탈 없이 수습해서 다행이야’를 되뇌며 마법 같은 정신 승리로 한 줌의 안도감을 얻고 싶다.
《오늘도 쾌변》(박준형, 웅진지식하우스, 2020.06.19.)
어차피 벌어질 일은 벌어지는 것이고, 어차피 해야 할 일은 계속 있다. 그래도 과거 선택을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것보다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는 아내의 말에 위안을 얻어본다. 나보다 머리가 더 복잡한 요즘을 보내고 있는 사람의 심정이 저런 마음이었구나 하며 나도 불평하지 않고 그저 오늘을 충실히 살기로 한다.
"말복이 지나면 시원해지길 추석은 덥지 않기를 작은 기대는 버리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