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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호너구리 May 28. 2024

세후 190 인간 - 출산율

시스템의 붕괴

나도 딱히 애를 낳지 않겠다로 다짐한 적은 없다. 어느 순간 포기하게 되었다. 이것에는 다양한 원인들이 있다. 내가 무작정 난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적은 없고 이것은 원인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것이다.


시스템

우리는 사회라는 큰 시스템 안에서 살아간다. 그 안에서 중요하면서도 중요하지 않은 역할을 하나씩 맡아가면서 살아간다.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면서 물론 이 시스템을 바꾸고 더 좋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이 시스템 위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간다. 그동안 내가 냈지만 체감은 안 되는 건강보험을 적용하여,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다.

이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내가 저항할 수 있는 것은 많지는 않다, 솔직히 말하면 별로 저항하고 싶지 않다.


그저 아프면 병원을 가고 병원에 가서 수납을 하면 내가 랜돈과 별개로 병원에서 보험공단에서 돈을 지불해 준다. 여기서 내가 굳이 할 것은 없다 그저 시스템에 올라타 내가 원하는 것을 받기만 하면 된다.


내가 의학적 지식을 알필요는 없다. 내 췌장이 어딨는지, 지금 증상이 무슨 증상인지, 어디가 아파서 그런 건지, 이런 건 시스템 안에서는 무의미하다.


그저 내가 가진 사회적 역할에 대해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성실하거나, 충실하게 살아가야 할 의무는 없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지하철을 탈 때, 목적지를 보고 간다. 몇 호선이고 종착지가 어디인지는 정해져 있다. 이것은 시스템 안에 다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지하철 타는 것이다. 내가 5호선 방화행을 타면 당연히 방화까지 보장된 시간까지 가게 되어있다 큰 사고가 있지 않는 이상.


세상이 아무리 엉망이라도 지하철은 정해진 시간에 오고 맞춰서 나는 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시스템 안에서 평범하게 살아간다면 시스템에 순응하고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편한 일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난 지하철을 모는 방법도 모르고, 내 몸에 대해서 모른다. 병에 대해서도 모르고, 의학적 지식은 전무하다. 내가 병원을  갈 때,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가야 되며, 지하철을 갈 때 지하철을 직접 몰아야 한다면, 그 누구도 안전을 장담하기 힘들 것이다.


전세사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구나. 전세라는 시스템은 굉장히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이다. 전세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거주 문화라는 것은 워낙 유명한 이야기다.


우리는 전세라는 시스템에 익숙하다. 보통 신혼집을 전세방 얻어서 살면 된다고 흔하게들 말한다. 그만큼 전세라는 제도 자체는 우리나라에 뿌리 깊게 들어온 거주문화이다.


전세사기로부터 시스템이 붕괴가 시작되었다.

누구도 믿지 못하고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평범하게 늘 공인중개사를 통해 집을 구했다.

내가 토지에 대해서 아는 것도, 주택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었다. 그저 내가 가진 것과 그 상황에 설명해 주면 알아서 시스템 안에서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다.


내가 알 필요가 없었다. 어려운 것들은 은행과 공인중개사들이 처리하고 우린 그저 맡기기만 하면 되는, 시스템 위에만 올라타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이 집이 근린 생활시설인지, 다세대 주택인지, 누구의 소유인지, 근저당은 잡혀있지 않은지, 부채가 잡혀있지 않은지,

시스템이 마비되었기에, 이젠 직접 해야 한다. 내가 확인하고 진행해야 한다.


병원에 가서도 이젠 스스로 의학용어를 파악하고 무슨 약을 써야 하고, 무슨 수술을 해야 할지 스스로 배우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몇 명이나 그럴 수 있을까. 당장 그저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나조차도 그러하다.


전세사기 뉴스를 보면서 우리 엄마가 혀를 끌끌 찬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전세라고 하면 얼마내고 몇 년 사는 것 아니냐. 난 그런 것들을 모르고 살았다. 공인중개사가 다 알아서 해주었다고 말한다.


온실 속에 화초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다 경험해 보고 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전세사기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많은 것을 잃었을 때, 우리 사회는 과연 다시 일어날 기회를 줄 준비가 되어있을까.


결국 전세라는 시스템이 무너지고 균열이 생겼을 때, 월세로 가거나, 포기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 위에서 갭투자라는 이름 아래서 큰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침묵한다. 네가 부주의했다느니, 멍청해서 사기를 당했다느니 이런 소리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여유가 있는 집은 아마 매매로 살아가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 집 갖기를 포기한 지는 오래되었다.

이 정도까지는 사실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내 집을 가진다는 것은 어차피 어려운 일이기에, 그다지 실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쥘 수 있었던, 2년 혹은 4년 정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전세


이 전세가  무너졌을 때, 나를 포함한 젊은 세대들은 흰 수건을 던지며 포기를 선언하였을 것이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을 희망과 용기가 꺾였다. 거기에 출산율도 같이 꺾였을 뿐이다.


출산율을 결과일 뿐이고, 단지 첫 번째 원인을 말했을 뿐이다, 시스템의 붕괴 혹은 부재


어떠한 인류도 직면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저 손을 놓고 있는 정책결정자들이 한심하게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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