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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형 Mar 18. 2022

여수의 하루

여수 한달살기 / 메종리바벨라에서...

          엷은 거튼사이로 겨울의 여명이 비쳐든다. 시골어촌의 아침은 도심지와는 사뭇 다르다. 아침 6 30분이 넘으면 가로등과 함께 어둠이 꺼지기 시작한다. 7 즈음이면 해가 뜨지는 않았지만 주위는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내고 하루 해맞이 준비를 시작한다. 7 반이 되면 겨울의 늦은 해가 포구에 보석같은 햇살을 뿌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묵고 있는 숙소는 서향이여서 일출을  수는 없지만 등진 햇살에 반짝이는 포구와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도심지의 어떤 아침과도 비교할  없을만큼 아름답고 평화롭다.


          직장생활 25년동안 이른 아침 출근해서 대부분 해가  저녁에 퇴근했다. 해가 비추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특별히 기억나는 햇살이 없다. 건강문제로 휴직을 신청하고 여수 돌산도에 내려와서 가능한 시간과 무관한 생활을 해보려고 했지만, 출근시간만 되면 눈이 떠지는 나를 생각하며  웃음을 짓곤했다. 일찍 일어나 블라인드를 걷어내고 2 숙소에서 포구를 바라보며 맞이하는 아침은  달내내 같은 모습이었지만  달내내 아름다웠다.  


         3-4평쯤 되는 방에서 혼자 생활을 하는데 매일 청소를 해도 매일 먼지가 나온다. 집에서 아내가 자주 청소를 해도 먼지가 쌓인다는 푸념의 의미를 이제서야   같다. 방에서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 앉아 책을 읽거나 영화보고 식사하는 것이 다인데 도대체  먼지는 어디서 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청소를 대충하고 식사준비를  한다. 처음 돌산도에 왔을 때는 세끼니를 모두 챙겨먹었다.   지나고 나니 배도 더부룩하고 근처에 식당도 없어서 식사준비를 하려면 귀찮기도 해서 늦은 아침과 빠른 저녁식사 두끼니로 사이클을 맞췄다. 처음에 돌산에 내려올 때는 와서 뭘하지 생각했었는데 식사하고 청소하고 빨래 하는 것으로도 하루의 30% 지나가는  같다. 하루가 후딱이라는 아내의 말 이해가 간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10 30 즈음 1 카페가 영업을 시작한다. 인터넷에서  팬션 메종리바벨라를 선택한 이유가 세가지 있다. 첫번째는 바다가 가깝다는 . 두번째는  도심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조용하다는 . 세번째가 1층에 카페가 있어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심각한 상황인지라 문을 여는 시간에 카페에 내려가 2-3시간정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숙소에 머문 4주동안 오전시간은 대부분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다가 커피를 마시고, 카페 통유리를 통해 한가로운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여수에 내려오면서 어떤 책을 챙겨올까 고민하다가 여수여행에 관련된 책들과 읽고 싶었던 책 몇권을 챙겨서 내려왔다. 내 여수여행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준 '세 PD의 미식여행 여수편', 언제나 고독에 휩싸이게 만드는 작가 한강의 '여수의 사랑', 평소 읽고 싶었던 악의 평범성을 사유한 한나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얼마전 돌아가신 이어령 선생의 에세이 '흙속에 저 바람속에서', 현재 내 상태와 어울리지 않아 조금은 어색했던 세스고딘의 '린치핀', 에너지를 충전시키고 싶어 다시 펼쳐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 중 하나인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모두 이 카페의 구석자리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읽은 책들이다.


           오후가 되면 낚시를 하거나 산책을 했다. 숙소 메종리바벨라 앞은 작은 포구이다. 심심찮게 포구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겨울이라 물고기가 많이 잡히지는 않지만 바람이 심하지 않은 날을 골라 햇살을 받을 요량으로 욕심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면 무상한 오후를 보내기는 안성맞춤이다. 단 한번도 낚시를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여수시내의 낚시용품점에 가서 초짜임을 밝히고 주인장이 추천해주는 원투낚시 도구와 갯지렁이를 구입했다. 양심적인 낚시가게 주인은 초보이고 날씨가 추워서 고기가 잡히지 않을테니 최소한의 장비만 추천해 주면서 경험해 본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즐기라고 말해준다. 모두 합쳐 15,000원.



           매서운 바닷바람을 피해 겨울 햇살이 비추는 날, 낚시대를 던졌다.  일동안 헛발질만 하다가 복어새끼만 서나마리 잡았을 뿐이다. 원투낚시 채비는  트렁크에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


            운동이 필요하다 싶으면 동네를 산책하거나 뒷산에 올라 땀을 흘리곤 했다. 뒷산길을 통해서는 금오도 비렁길처럼 돌산도의 갯길이 형성되어 있다. 금오도만큼 트래킹 코스가  정비되어 있지는 않지만 1시간여 산허리를 걷다보면 옆마을 포구가 나온다. 포구에서 마을길을 따라 다시 숙소까지 오면 2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이다. 가끔  길을 따라 걷고 숙소로 돌아와 짧은 낮잠의 여유가 너무 달콤했던 기억이 스친다.


           저녁시간이 되면 간단히 저녁식사를 마치고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를 본다. 평소 TV를 거의 보지 않기때문에 저녁시간에 드리마를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우리나라 드라마와 미드를 접하다보니 재미에 푹 빠져 저녁마다 몇 시간씩 그 안에 앉아있게 된다.

           몇 군데 특별한 여행을 다녀오기는 했지만 여수에서의 일상은 이런 루틴으로 지내게 되었다. 어찌보면 평범하지만 직장생활이 지속된 25년동안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루틴이다. 사실  어색하기도 하고 조금은 불안하기도 했다. 이렇게 한가해도 되는건가 싶어서...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결정한 휴직이지만 당분간 이런 한가로운 일상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즐기기로 다짐하지만 여전히 조금은 어색한  모습을 발견하며 여수의 일상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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