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군 간성 송죽리 ~ 아야진항
동해바다 도보여행길인 해파랑길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직장 때문에 한 달에 2-3일씩 나눠서 여행하고 있습니다. '해파랑 일기'라는 제목으로 도보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22년 10월 02일 ~ 3일 흐리고 비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월급쟁이 습성인지 일찍 잠에서 깬다. 모텔이다. 깨끗하지는 않지만 혼자 자는데 비싼 펜션이나 호텔을 이용하기가 뭣해서 가까운 모텔에서 묵었다. 새벽 5시에 잠에서 깨어 뒤척이다 결국 일어난다. 샤워를 하고 일출시간을 검색해보니 6시 30분쯤이다. 날이 좀 흐리기는 하지만 일출을 받으며 걷는 것도 좋겠다 싶어 배낭을 꾸린다. 이른 아침에 택시가 잡힐까 하는 걱정과 함께 어플로 택시를 불러본다. 1분도 되지 않아 바로 택시가 잡히고 모텔 앞으로 내려오라는 택시기사의 전화다.
반가운 마음으로 택시에 오르니 여성 기사분이 상냥한 목소리로 아침인사를 건넨다. 목적지를 이야기하니 '도보 여행하시는 분인가 보네요'라는 물음이 돌아온다. 하긴 아침 6시에 민가가 거의 없는 도보여행길 교량 앞으로 가자는 사람이면 모두 도보 여행자겠지. 기사님은 날씨가 좀 쌀쌀해서 인지 스카프에 마스크 그리고 모자도 눌러쓰셨고 70대는 되어 보이시는 분이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날씨 이야기며 간단한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요금이 계산되고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기사님이 밖으로 나오셨다. 자동차 트렁크에서 떡 한 팩과 요거트가 들어 있는 검은 비닐봉지를 꺼내시더니 본인이 먹으려고 샀는데 근처에 식당이 없으니 아침으로 여행하다 먹으라고 건네신다. 이상한 거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먹으라고, 즐거운 여행되라는 말과 함께 택시에 오르신다. 나는 12,000원의 택시비를 지불하고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기쁨과 감사를 기사님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날씨가 흐려서 제대로 된 일출을 보기는 힘들게 됐다. 구름 사이 아침 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붉은 기운만 뿜어내고 있었다. 집 한 채 없는 나대지에 커다란 바람개비가 서 있고 멀리 수평선에서 시작되는 붉은 하늘은 내 걸음을 한참 동안 묶어둔다. 내가 서 있는 이 시간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할 수 없어 걸음을 옮겨 놓을 수 없었다. 짧은 몽환이 지나가고 흐린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자 나는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이른 아침 내가 받은 또 하나의 선물이다.
동쪽의 아침해를 벗 삼아 걷기를 이어간다. 일찍 문을 열어준 고마운 바닷가 카페에서 모닝커피와 떡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송지호를 만났다. 송지호는 바다와 연결된 만이 파도와 해류로 인해 모래가 퇴적되어 입구가 막혀 만들어진 호수(석호)이다. 송지호 주변으로 숲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 숲길로 해파랑길이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숲길은 산의 둘레길이 대부분인데 송지호의 숲길은 평지이고 바닷가와 호수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 주변 숙소나 캠핑장에서 산책 나온 사람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번잡하지는 않다. 숲의 초록과 새소리, 송지호의 물빛을 바라보며 발걸음 속도를 늦춰 길지 않은 숲길을 즐겨본다.
송지호 숲 길을 지나 해안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고 고성군 아야진 해변에 도착했다. 해변가는 사람들과 차량으로 정신이 없다. 점심을 먹고 싶었지만 식당마다 사람들로 넘쳐날 뿐 아니라 재료 소진으로 영업을 마감한다는 푯말을 내 걸었다. 아야진 해변을 벗어나 오후 3시쯤 오늘의 여행을 마감한다. 오랜만의 도보여행이고 여행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발생태가 엉망이다. 발바닥과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약국이 없어 상처 소독을 제대로 못 해서 염증이 생긴 것 같다. 양말도 좀 두꺼운 것으로 준비해서 물집에 대비했어야 하는데 도보여행을 다시 한다는 기쁨에만 들떠 있었던 모양이다. 속초의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서 발을 치료했다. 발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일정을 바꿔 내일 아침 버스표를 예약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선다.
지방에 여행을 오면 특별한 지역의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1인분을 주문하기 힘든 음식이 대다수여서 곤란한 경우가 많다. 속초의 도미토리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먹고 싶었던 곤드레밥을 먹을까 생각도 해 봤지만 발상태 때문에 이동이 불편했다. 숙소와 가까운 시외버스터미널 부근 식당에 들어갔더니 다행히 메뉴에 백반이 있다. 대부분 백반은 뻔한 반찬에 국 한 그릇이 전부이지만 보이지 않게 그 지역과 식당의 특색을 보여주는 메뉴이다. 무엇보다 저렴하고 혼자 먹기 좋아서 혼자 하는 여행 메뉴로는 그만이다. 기쁜 마음으로 백반을 주문한다. 된장국에 꽁치 한 마리, 계란 프라이와 투박한 멸치볶음, 김치와 나물들이 한 쟁반이다. 특별할 것 없지만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이렇게 첫 번째 해파랑길 여행을 마감한다. 준비 부족으로 조금 미련이 남기도 하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일기를 마감한다.
■아내와 다시 여행하고 싶은 아름다운 곳
ㅇ 고성군 거진읍 응봉 : 20-30분쯤 산 길을 걸어 응봉에 오르면 동해바다와 어우러진 화진포의 절경을 바라볼 수 있다. 화진포는 이승만과 김일성, 이기붕이 별장을 지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ㅇ 고성군 거진 해맞이 산림욕장 주변 해안길 : 응봉에서부터 거진항을 이어지는 해안도로. 도로 주변 갓길에 주정차를 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많다. 차를 세우고 차박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간단히 캠핑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바닷멍을 때리는 사람들이 있다. 북적거리지 않고 깨끗하고 넓은 동해바다를 즐길 수 있다.
ㅇ 송지호 숲길 : 바다와 호수, 숲 길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숲길 쉼터에 주차장도 있어서 차를 이용한 접근도 편리하다. 강원도 여행을 하고 남는 시간 숲길을 걸으며 담소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