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형 Oct 30. 2022

목적지향적 여행, 과정지향적 여행

고성군 아야진항~속초시 설악항

동해바다 도보여행길인 해파랑길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직장 때문에 한 달에 2-3일씩 나눠서 여행하고 있습니다. '해파랑 일기'라는 제목으로 도보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22년 10월 29일  흐리고 비


          지난 여행의 종착지인 고성군 아야진에서 두 번째 여정을 시작한다. 태백산맥을 넘어 영동에 들어서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야진 바다는 이미 먹구름으로 가득하다. 싫지 않은 엷은 빗방울을 맞으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먹구름 가득한 바다는 성난 파도로 온통 넘실거린다. 바람과 파도를 피해 바닷가 바위마다 갈매기가 가득하다. 심술난 파도의 전쟁에 갈 곳 잃은 갈매기들은 그리운 바다와 가까운 갯바위에서 파도의 전쟁이 잠잠해 지길 기다린다. 전쟁을 피해 넘어온 이곳 고성의 피난민들 처럼…


         4차선 국도길을 걷다 속초시 장사항으로 들어서자 비릿한 갯내가 나기 시작한다. 나는 갯내를 참 좋아한다. 장사항에 들어서는 길에 크게 심호흡을 하며 몸속으로 갯내를 받아들인다. 내 고향은 비린내 가득한 항구도시이다. 비록 유년기만을 보내서 기억은 거의 없지만 나에게 갯내는 고향의 냄새이다. 방학이 되면 고향 목포에 내려갔다. 목포역에 내리면 선창이 가까워서 엷은 갯내가 고향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외가에 도착하면 외할머니의 따뜻한 반김과 함께 외할아버지는 손주를 위해 선창에 나가셨다. 할아버지는 손주가 좋아하는 낚지와 칠게 젓을 손에 들고 갯내와 함께 돌아오셨다. 나에게 갯내는 고향의 냄새이고 지금은 볼 수 없는 그분들의 사랑이다. 장사항의 비릿한 갯내를 다시 한번 깊이 들여마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닷가 카페의 맞은편 자리에서 세명의 손주와 할머니가 앉아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갯내와 함께 그리움도 스며드는 시간이다.


          고성부터 속초를 지나오며 해변길은 만과 곶의 연속이다. 만에는 어김없이 해변과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마을과 마을 사이는 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곶들이 자연의 울타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곶을 경계로 마을의 형태도 제각각이다. 단층 건물이 대부분이고 옛 모습을 간직한 마을이 있는가 하면 4-5층의 모던한 건물과 호텔, 카페로 가득한 마을들도 있다. 어쩻든, 마을들은 만과 곶을 경계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마을마다 건물의 형태부터 지향하는 모습들도 상당히 달라 보여서 사회적, 자연적 경계의 대단함을 새삼 느껴본다.


          지난 여행을 마치고 친구가 내 도보여행에 대해 ‘왜 도보여행인데?’라고 물었다. ‘자동차 여행도 좋지만 도보여행은 과정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아. 맛집을 찾아서 가는 것도 좋지만 걸으면서 우연히 만나는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도 못지않게 크고 무엇보다도 풍경이나 사람들의 모습을 시간을 가지고 여유있게 볼 수 있어’라고 답했다. 그 친구는 내 여행을 이렇게 정리해줬다. ‘목적지향적 여행보다는 과정지향적 여행이 좋다는 말이네. 좋네.’ 짧고 명확한 정리가 아닐수 없다. 자동차여행은 목적지를 정해놓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즐기는 여행이지만 도보여행은 여행의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경험과 생각, 느낌을 즐기는 여행이다. 나는 과정지향적 여행을 선호한다.


이렇고 하루가 지나갔고 설악항의 민박에서 고단한 발에 휴식을 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택시 기사 할머니의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