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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형 Nov 16. 2022

혼자 있는 오솔길에서는 어른이 될 필요가 없다.

속초시 설악항에서 강릉시 주문진항

동해바다 도보여행길인 해파랑길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직장 때문에 한 달에 2-3일씩 나눠서 여행하고 있습니다. '해파랑 일기'라는 제목으로 도보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22년 10월 30일~31일 흐림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 동트기 전 출발할 요량으로 준비를 서두르는데 대학 동기들의 단톡방이 울려댄다. ‘아이들은 모두 괜찮은 거지?’라는 메시지다. 신새벽부터 웬 뜬금없는 소리인지 어리둥절 해 있다가 뉴스를 보라는 친구들의 말에 인터넷 뉴스를 보고 이태원 사고를 알게 되었다. 집에 전화를 해 보니 아들 녀석과 딸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고 아내가 알려준다. 내 아이가 무사한 것은 다행이지만, 희생자들이 아이 또래의 청년들이어서 부모 된 마음으로 울컥함을 한동안 달래야 했다. 이제 겨우 성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생때같은 자식들을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이 느껴져 종일 안타까운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해변길을 걷는다. 날씨가 흐려서 인지 파도소리가 세차다. 세찬 파도소리 사이로 들리는 '크루르르...' 돌 구르는 소리에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본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몽돌들이 해변을 이루는 몽돌해변이다. 물치항과 후진항 사이에 정암해변에 몽돌로 이뤄진 해변이 있다. 가족들과 몇 번 왔던 곳이었는데 그때는 왜 이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이른 아침 파도소리와 어우러진 몽돌의 소리가 흐린 바다의 거친 숨소리 같아 한참을 귀 기울여 본다.


          어제에 이어 오전 나절 흐리던 날씨가 오후가 되어서야 차차 개일 모양이다. 여전히 동해에는 검은 먹구름이 가득하지만 서쪽 태백산맥에는 푸른 가을이 동쪽 바다로 움직이고 있다. 내일이면 맑은 가을날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해변길이 끝나고 공사 중인 위험한 지방도에 접어들었다. 보도도 없고 갓길이 좁은 지방도는 도보여행을 하기에는 가장 힘든 곳 중 하나이다. 도로의 왼편으로 차를 마주 보고 걷다가 차가 다가오면 옆으로 피해있는 것 외에는 별도리가 없다. 위험하고 재미없는 지방도를 걷다가 갑자기 나타난 소나무가 울창한 오솔길로 해파랑길의 GPS가 길잡이한다. 보석같은 길이라는 말이 적당한 표현일까?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꼬불한 오솔길이 이어지고 간간이 새들의 소리가 들린다. 어제 내린 비로 웅덩이가 만들어져 때로는 종종걸음으로, 때로는 큰 걸음을 내딛어야 하지만 모두가 놀이다. 혼자 있는 오솔길에서는 어른이 될 필요가 없다. 혼자 있는 숲 속의 나는 오롯하게 아이가 되어 눈치없는 놀이에 빠진다.   


          또 하루가 지나고 이른 아침 길을 나선다. 아침 길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매일 아침 다른 즐거움으로 나를 찾아온다. 오늘 아침은 흐릿한 해무가 바다를 감싸고 있다. 먼 바다에서는 태양이 구름 사이로 삐죽이 붉은 기운을 내뿜고 갯바위와 해송사이에는 해무가 드리워져 있다. 어렴풋이 붉은 동해와 옅은 갯내와 함께 온 가을의 선선한 아침이 가볍고 상쾌하다. 언제나 아침 산책은 즐겁다.


         이번 여행은 발바닥이 멀쩡하다. 지난 여행 양쪽 발바닥에 커다란 물집이 생겨 집으로 돌아와 병원치료를 받아야 했고, 2주 이상 고생했다. 준비없이 무작정 시작한 도보여행을 탓하며 몇 가지 여행준비를 했다. 바닥이 두꺼운 전문 트레킹 양말과 트레킹 양말 안에 속내의처럼 착용하는 발가락 양말 그리고 25리터 등산용 배낭과 트레킹화를 구입했다. 준비하고 출발한 이번 여행은 3일 동안 75km를 걸었지만 물집으로 고생을 하지는 않게 되었다. 인간이란 망각의 동물이다. 10년 전에도 450km 국토종주를 하며 신발과 양말때문에 물집으로 큰 고생을 했었는데 같은 일을 겪고 나서야 깨닫게 되니 말이다.


         그렇게 아침 기사문항을 출발해 주문진항으로 3일째 도보여행이 이어졌다. 즐거운 여행이었지만, 토요일 아침 갑작스레 발생한 이태원 사고가 내내 마음에 그늘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사고로 숨을 거둔 청년들의 명복을 빈다.    




■ 아내와 다시 여행하고 싶은 아름다운 곳


속초 바다향기로 : 외옹치해수욕장에서 외옹치항에 이르는 바다 절벽길을 테크로 연결해 놓은 아름다운 길이다. 현재 이 데크길은 롯데리조트를 감싸듯 만들어져 있다.


양양군 하조대와 하조대 해수욕장 : 하조대는 기암괴석과 절벽 아래 파도치는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하조대 해수욕장은 민가와 바다 사이를 기다란 해송숲이 이어주는 곳이다. 해송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아름답다.

양양군 휴휴암 : 바닷가 절벽 위에 새워진 작은 암자이다. 암자 크기에 비해 커다란 부처님상이 인상적이다. 맑은 가을 하늘과 어우러진 바다가 절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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