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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형 Dec 29. 2022

인생의 이정표를 찾는 시간-여행

강릉시내 ~ 강릉시 안인항

동해바다 도보여행길인 해파랑길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직장 때문에 한 달에 2-3일씩 나눠서 여행하고 있습니다. '해파랑 일기'라는 제목으로 도보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22년 11월 20일 흐림


강릉의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


          5시 30분. 습관적으로 잠에서 깨어나지만 몸이 개운치 않다. 하루를 보낸 강릉의 게스트하우스는 거실을 중심으로 방들이 위치하고 있고 내가 묵은 방은 침대 4개가 있는 도미토리이다. 게스트하우스의 구조때문에 저녁에 거실에서 식사하고 술 마시고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아무리 조심해도 들릴 수밖에 없다. 12시쯤 술을 마시고 젊은 숙박객들이 들고나는 소리에 그나마 자던 선잠에서 깨어 2층 침대를 멀뚱멀뚱 쳐다보며 시간을 보낸다. 도미토리 숙박객 모두 침대에 눕고 조용해진 뒤에야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조금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앉혀 스트레칭으로 잠을 쫓아내고 주섬주섬 옷을 챙긴다.


보행자교량과 광장이 만든 작은 변화


          6시가 조금 넘어서 배낭을 메고 강릉시내로 나왔다. 신새벽의 청량감이 쌀쌀해진 바람과 함께 온몸으로 퍼져 하루를 시작하는 힘이 되어준다. 강릉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진출하는 입구에 남대천을 넘어가는 보행육교가 있다. 어제 강릉으로 진입할 때도 보행육교를 건너 시내로 진입했는데 나갈 때도 또 다른 보행육교가 있다. 하천에 보행자를 위한 교량을 만들고 교량 양단에 광장을 조성했다. 사람들은 광장에서 길거리 공연을 즐기고 광장주위로 생겨난 길거리음식과 맛집에서 저녁을 즐긴다. 이른 아침에는 아침운동과 산책을 나온 사람이 드문 드문 보인다. 아마도 구교량을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지역사람들의 작은 문화변화를 이끌어 낼 만한 좋은 시도가 아닌가 싶다.


인생의 이정표를 찾는 시간 - 여행


          홀로 도보여행을 하다 보면 가장 반가운 것이 나뭇가지에 묶여있는 리본이다. 특히, 산길이나 논밭이 전부인 시골길을 가다 보면 고됨과 한적함 속에 묻혀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고 오직 걷는데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볼 때 붉은색 푸른색의 천조각을 발견하면 안도의 한숨과 무의식 속에서 벗어나 주위를 둘러보며 현실을 인식하곤 한다.

           해파랑길은 GPS가 워낙 잘 되어있어 길을 조금만 벗어나도 시끄러운 경고음이 울리고 잦은 경고음이 귀찮아서도 길을 벗어나기 힘들다. GPS가 이정표 역할을 대신하기에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이정표 리본을 볼 때의 안도감과 기쁨은 특별하다. 아마도 내가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을 상대적으로 직접적인 아날로그 방식으로 받을 수 있어서 인듯하다.  


          인생을 살면서도 이정표 리본처럼 내가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이 가끔 필요하다. 그 확신은 친구나 가족이 줄 수도 있고, 책이 대신해 줄 때도 있다. 하지만 인생이란 길을 걸으며 많은 이정표를 만나지만 어느 이정표를 따를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몫이다. 이정표는 어느 곳에나 있지만 선택과 책임은 결국 스스로 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이정표는 우리에게 '옳은 길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의 시간과 계기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을 찾기 힘들 때면 이렇게 여행을 통해 인생의 이정표를 찾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반가운 부부 여행자.


          본격적으로 산길에 접어들기 직전에 커다란 감나무 옆에서 배낭을 메고 사진을 찍는 부부를 만났다. 인적 없는 시골길에 등산복 차림으로 배낭을 메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 누가 봐도 해파랑길 여행자들이다. 반가운 마음에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고 지나친다. 본격적인 산길에 접어들어 등산에 영 재주가 없는 나는 헉헉거리며 무거운 발을 옮기고 있다. 지도로 볼 때보다 산길은 길었고, 간식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산길의 고됨과 허기로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12시가 다 되어 갈 즈음, 여전히 산길을 헤매고 있는데 앞서 인사를 나누었던 부부가 숲 속 벤치에 앉아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눠서 인지, 부부는 본인들이 가지고 온 떡을 권한다. 다른 때 같으면 예의상 한 번 정도는 거절하였겠지만, 이번에는 바로 '감사합니다'라는 말고 함께 떡을 염치없이 받아 들고 겨우 허기를 면한다.  

          이 부부는 분당에 사는 분들인데 부부가 매주 한 코스씩 도보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남편분이 도보여행을 하다가 부인이 같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내분은 처음에는 한 번만 해보려고 시작했지만 걷는 여행을 통해 보여지는 세상이 차를 타고 여행할 때 보여지는 세상과 너무나 달라서 도보여행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하루에 긴 거리를 여행하기보다는 남편과 천천히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는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나도 걸으면서 보여지는 자연과 도시, 사람들의 모습이 좋아서 도보여행을 해오고 있다고 말했고, 각 자의 여행계획을 한참 동안 이야기 나눴다. '안녕하세요'라는 한마디가 만들어준 좋은 인연에 감사하며 언젠가 길 위에서 다시 만나길 기원해 본다.


          오후 2시가 넘어서 목적지인 안인항에 도착했다. 강릉으로 돌아와 KTX를 타고 귀경길에 오른다. 이번 여행이 올해의 마지막 여행이다.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초봄이 되면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며 3번째 해파랑여행을 마친다.


■ 아내와 다시 여행하고 싶은 아름다운 곳


 ㅇ 경포해송길 : 강릉 사천해수욕장에서 순포해수욕장 사이에 위치한 해송길. 바다와 어우러져 있고 붐비는 구간이 아니어서 산책하기 좋은 길.

 펜션 오월의 정원 : 강릉시 구정면에 위치한 펜션이다. 해파랑길 노변에 위치한 펜션으로 우연히 지나치다 보게 되었다. 넓은 정원에 깨끗한 시설이 인상적인 풀빌라. 해안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정원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서 가족휴가를 보냈으면 좋을만한 곳처럼 보인다. (건물내부는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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