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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기차역 국숫집

혼자만의 자유

by 장형

나는 덩치만큼이나 음식을 즐기는 편이다. 그렇다고 그럴싸한 식당이나 비싼 음식을 즐기는 편은 아니고 특색있는 음식이나 식당을 좋아한다. 직업 상 출장이 잦은 편이라 출장지에서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이왕이면 취향에 맞는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출장의 절반 이상이 후배들과 동행하는 경우가 많아서 가급적 식당이나 음식은 후배들의 선택에 따라 주는 편이다.


최근에는 전라남도 출장을 자주 다닌다. KTX로 광주송정역에 도착해서 자동차를 렌트하여 주변지역에서 업무를 처리한다. 저녁식사는 출장지에서 업무를 마치면 지역 사람들과 그 지역의 계절 특산물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다음날은 광주송정역 인근에서 점심을 먹고 서울 본사로 복귀하게 된다. 광주 송정역 인근에 허름하고 작은 국숫집이 하나 있다. 외관도 그렇고 낡은 커튼 사이로 보이는 내부의 모습도 허름하기 그지없는 집이다. 고속철도 시대가 열리고 새로 만들어 번듯한 역사와는 대비되는 그런 식당이다.


내가 국수라면 사족을 못 쓰는 편이여서 식당을 보는 순간부터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같은 지역에 자주 출장을 내려오지만 동행하는 후배들은 가끔 지역에 출장을 오는 것이고 음식으로는 최고라는 남도의 출장지에서 잔치국수를 먹자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것도 역사 앞 허름한 식당에서. 아마도 <세상에, 우리 부장이 광주에 가서 6000원짜리 잔치국수를 먹자고 하더라. 거기까지 가서 말야~> 이런 소리가 무서웠던 모양이다. 그러던 차에 기회가 왔다. 출장 온 후배가 다른 지역에 잔업이 남았고 나는 업무 때문에 먼저 본사로 복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기차 출발 40분 전 광주송정역에 도착했다. 주저없이 국숫집으로 향한다. 허름한 간판에 좁은 출입구에는 색 바랜 커튼이 쳐져 있다. 좁은 출입구 옆에는 가게의 외관만큼이나 낡은 화분들이 듬성듬성 놓여있다. 좁은 식당의 한 편은 주방과 김치 등 반찬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고 한 편은 손님들을 위한 1자 테이블이 있다. 4명의 손님이 벽을 보고 앉으면 만석이 되는 작은 식당이다. 아주머니는 식당의 역사만큼이나 나이가 있어 보이시는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 스타일의 분이시다. 멸치국수라는 내 주문을 받자마자 계산(선불)도 하기 전에 1인분의 국수를 솥에 돌려 넣는다.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에는 멸치국수와 비빔국수, 만두, 삶은 계란이 전부이다. 메뉴판 옆에 ‘국수는 주문 후 7분‘이라고 쓰여진 종이가 붙어있다. 기차역 바로 옆 식당이어서 조리 시간의 표시가 필요했을 듯하다. 손님들 자리 위에는 일식 우동집만큼 정갈하고 귀여운 통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모양, 다른 높이의 통에 소금, 후추, 고춧가루, 식초가 준비되어 있다. 작은 식당에도 반찬의 원산지 표시가 보인다. 10월 중순인데도 식당은 국수의 열기 때문인지 조금 후끈하다. 역시나 모양이 서로 다른 선풍기 3대가 덜덜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 식당과 연결된 작은 방은 출입구와 마찬가지로 작은 커튼이 있지만 내부의 모습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오래된 사진들이 보이고 아주머니가 쓰시는 듯한 책상에 몇 권의 장부가 보인다. 예전 시골에 고모가 운영하던 점빵에 딸린 작은 방의 모습과 비슷하다. 식당 안은 4명의 손님으로 만석이다. 모두 혼자 온 손님인 듯 주문하고 조용히 앉아 국수를 기다린다.


조용한 침묵을 깨고 멸치국수가 도착했다. 국물부터 맛을 본다. 진해 보이지 않고 누르스름한 색의 육수이다. 비릿한 냄새도 많이 나지는 않는다. 국물의 맛은 다소 슴슴하다. 김치와 함께 먹으면 조화가 좋을 것 같은 맛이다. 김치와 같이 먹을 요량으로 소금을 넣지 않고 후추와 고춧가루를 국수에 더한다. 부순 김과 파가 곁들여져 먹음직스럽다. 기차 출발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 서둘러 먹기 시작한다. 기차역 간이식당이어서 그런지 후루룩후루룩 잘도 들어간다. 옆자리 손님들도 전투태세이다.


생각했던 시간보다 빨리 식사를 해서 시간이 조금 남았다. 식당 공기 만큼이나 시크한 주인 아주머니께 잘 먹었다는 인사를 드리고 나온다. 나온 자리가 바로 채워져 또 솥에 국수를 던지시는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식당을 나선다. 멸치국수가 아주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짧은 기차역의 여유시간을 이용해 적은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혼밥으로는 괜찮은 식사이다. 무엇보다 후배들의 부재로 만들어진 기회를 누린 작은 자유가 만족스럽다. 광주송정역의 대합실에서 딸에게 줄 지역 간식거리를 사들고 KTX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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