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 속의 발걸음

침묵은 언제나 뭔가를 말하고 있다

by 제환

병원에서 심리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사실상 처음도 아니어서 두려움이나 긴장이랄 것도 없긴 했지만

(애초에 느낄 수나 있긴 한가?)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이 꼭 S와 닮아 혹시 몰라 찾아갔으나,

결과적으로 전혀 다른 판정을 받았다는 점은 신기할 따름이었다.



만성 우울증.



담당의는 확실한 병명에 그저 웃는 얼굴로 얘기를 해 줄 따름이었다.

강박이 높게 나오기는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이야기를 나눠보고,

우선 우리는 이런 약을 쓸 것이며, 이런 방법으로 노력할 것이다.

장기적인 치료를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런 말을 들었다.



단지 그것만 있는 건 아닐 텐데.

좀 더 이야기해볼까.

잠깐 생각하다 움직이려는 혀를 깨물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반박하는 모양새도,

어떻게든 말하려는 모양새도

구차해 보일 게 뻔하니


상대가 만족스러워 보인다면 그냥 이대로 그만두자.

어차피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고,

보이지 못한 건 추후에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물론 이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아 깨지긴 했지만)


별다른 상담 없이 마무리된 진료에

문득 떠오른 게 있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찾아봤을 땐

보건소 정신건강센터에서도 지원을 어느 정도 해 준다고 들었는데—

보건소의 강좌나 행사 같은 걸 듣는 것도 도움이 되긴 할까요?’



사실 이 질문은

내 치료 계획과 준비에 대해

확인받고자 물은 질문이었다.



뭐든 준비는 확실한 게 좋았고,

주변의 이야기는 전부 주관적이기에 믿을 수가 없지 않나.


그러니 확실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물은 질문이었으나…

사실상 짧은 수긍 또는 부정이면 될 말에

담당의는 잠시 침묵하였다.



덕분에 멍하니 있던 정신이

천천히 돌아옴을 느꼈다.



찰나의 짧은 침묵 후에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

대답하는 담당의의 표정엔

모호한 웃음이 걸쳐져 있었다.



문득 사장님의 침묵이 떠오른 순간이었다.

그것은 명백한 망설임이다.


그렇다면 저 미묘한 웃음은 무엇인가.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그 짧은 침묵이,

내가 말하려다 삼킨 것들의 무게를 다시 떠오르게 했다.

말하지 않기로 했던 감정들이

납처럼 가라앉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진료를 끝내고 나와

천천히 다시 직장으로 향했다.



내 문제가 전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약 봉투를 괜히 매만지며

다시금 계획을 곱씹어 보았다.



물론 신체적인 부분에 있어선 해결이 되겠지만

정신적인 부분에서 해결이 될까 묻는다면

그건 명확히 대답할 수가 없다.


아닌가,

오히려 내가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병원의 결과가 확실한데

그럴 리가 없다며

나는 좀 더 특별할 줄 아는

그런 존재일지도 모르지.



괜히 생각이 이어지다 보면

머릿속에서 작게 파도 소리가 울리는 기분이라

눈을 감을 따름이었다.


귓가에서 울리던 파도 소리는

좀체 사라질 줄을 몰랐다.

근래 들어 더욱 그러한 느낌이다.


이것 역시 병의 증상으로 해당하는 무언가일까.



어쨌든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대답은 얻었으니,

우선 계획한 대로 치료에 대한 진행은 해보리라.



이번의 진료와 대답으로 인해

머릿속에 그려뒀던 흐름과는

조금 다르게, 조금 더 느리게 진행될 수도 있겠지만

그게 틀린 건 아니니까.


변화는 늘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찾아오고,

지금의 나는

나를 알아가는 중이지 않나.


나라는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멈추고,

어떤 이유로 다시 움직이게 되는지를

파악하는 중이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많은 모순과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나는

그걸 견디며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다만 오늘만큼은,

돌아가는 이 걸음이

그리 틀린 방향은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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