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위를 걷는 법

숨이 머물던 오후의 온도

by 제환

내가 살아가는 작은 원룸은 수족관이고 어항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그 속에서 숨을 찾고

호흡하며 천천히 가라앉는다.

햇빛에 비치는 먼지처럼 부유하던 몸과 마음이 가라앉으면

나는 그곳이 꼭 관 같아서 좋았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은

그런 내가 가라앉는 걸 원치 않았다.



“제환 씨, 금요일 날 약속 있어요?”



회사 동료인 Y와 H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기할 따름이다.

나 역시 내가 온전하지 못하단 걸 알고 있다.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매사 어설픈 없는 사람.

말의 표현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어긋나있는 무언가.



자격지심인가 싶기도 하지만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는 걸 나도 안다.

고쳐야지 하면서도 멈춰있는 날 보면

괜히 숨이 턱 막힌다.


처음에야 그럭저럭 넘어갈 만하지만

그 모습을 반복해서 보면 짜증과 답답함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적어도 내가 타인이었다면

그런 나에게 질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Y와 H는

언제나 친절하고 상냥하다.



내가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뒤

직원들끼리 함께 식사하자는 말을 건넨 걸 보면

이미 내 기준에서는 과할 정도로 따뜻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괴롭다.

그 상냥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니까.



끝과 끝은 통한다지만

심연에서 살아가는 심해어가

빛을 받으며 사는 새와

어울릴 수는 없지 않나.


그 상냥함에 내가 세운 폐허가 흔들리는 게

참을 수 없이 힘들었다.



질식할 만큼 좋은 사람들이란 말은 과장이 아니다.

나는 돈이 없다는 핑계로

(물론 실제로도 없긴 했지만)

만남을 거절하면,

도리어

본인이 낼 테니

함께 가자며 물속으로 손을 뻗었다.




낮인지 저녁인지도 분간되지 않는 하늘 아래

꽃가루가 흩날린다.


그림자는 여전히 짧고,

주변의 색은 선명하다.


간만에 나와 둘러본 세상은

여전히 눈부시고 찬란하다.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걷지만

물과 기름 같은 이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두 사람의 입에서

곱게 빚어 만들어진 내 이름이 흘러나올 때면

그곳에 있어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이쪽에 사이드로 파는 고구마 맛탕이 진짜 맛있어요”



Y는 음식 얘기가 나오면

목소리에 좀 더 힘이 들어간다.


Y의 행복을 확인하려면

그 목소리에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진폭이 얼마나 커지는지를 보면 된다.



“이거 된장찌개 같은데?”



H는 웃으면 큰 눈이 반쯤 접히며 반달 모양이 된다.

평소에도 자주 웃지만

진심으로 즐거울 때는

말의 톤이 조금 올라가고, 속도도 빨라진다.


함께 식사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비어있는 내 안도

그들의 마음이 쌓여 즐거워질지 모른다 생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전에도 몇 번 더 만날 걸 그랬다.


아쉬움이 묻어난 그들의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박혔다.


그게 울컥 차오르는 감정인지

아니면 미련으로 설명해야 할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누군가의 품에 진심으로 안기면

이런 따뜻한 기분일까 싶은 순간이었다.



보통 처음은 잊히지 않는다고 하더라.


처음 만난 사수

처음 만난 후임.


Y와 H는 내게

처음으로 공간을 허락해준 사람들이다.


기꺼이 옷이 다 젖더라도

심연에 잠긴 내 손을 잡아준 사람으로 기억될 테다.


이런 순간의 온기가 있기에

나는 여전히 삶과 사람들을

완전히 미워할 수가 없다.



덕분에 이번 한 끼가

오래 기억날 것 같다.



찬란하고 분명했던 그 시간의 온도,

그리고 그 속에서 나를 불러주던 누군가의 목소리.


나는 여전히 심연의 어딘가에 머물고 있지만,

그날의 기억은 물 위에 잠깐 떠올랐던 숨결처럼

언젠가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할지도 모른다.


그게 지금이 아니더라도,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로

나는 오늘도

조금은 더 성실하게 생존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말

다들 여름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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