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말하지마, 빙봉
학창 시절, 나는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열아홉과 스무살. 그 사이는 단지 한 해의 차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경계선에 머물렀을 때의 난 설레이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제 지갑에 넣어다닐 주민등록증이 생긴다는 것이, 술을 어디에서든 마실 수 있다는 것이, 내 마음대로 머리를 염색하고 파마해도 누가 뭐라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내 시간을 나만 온전히 쓸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성인이 된다는 것이. 난 참 멋지고 좋을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열아홉의 나는 스무살의 나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토록 원하던 성인이 되어보니, 성인이 되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어리고 뭣 모르던 정신머리에 갑작스레 성인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중요한 사실을 난 인지하지 못했다. 그런 시기에 타지생활을 시작했던 건, 마치 활활 타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였다. 책임을 지는 법을 가르쳐 줄 제대로된 어른들이 주위에 없었기에, 어른이 되는 과정을 난 험난하게 셀프로 배워야만 했다.
인생은 교과서와는 아주 많이, 달랐다.
성인이 된 나는 연애를 시작했고, 꿈을 찾았고, 새로운 삶을 맞이했다. 하지만 내 앞에 펼쳐진 길은 어릴 적 내가 생각했던 길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였다. 그러기에 여러번 방향을 잃었고, 선택지 앞에 머뭇거렸으며, 소중히 했던 신념을 꺾었다.
인생에는 조그맣더라도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많은 변수들이 존재했다. 세상엔 플랜 A와, 그 실패에 대비한 플랜 B로만은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많았다. 그랬기에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플랜 A, B, C... 등의 실패로 인한 플랜 E 쯤인 것 같다. 많은 실패에 굴복한, 최선이 아닌 차선의 길. 제일 좋은 선택지가 아닌, 그나마 나은 선택지.
마지막으로 밤하늘을 올려다 본 건 언제였을까
나는 별이 떠있는 밤하늘을 참 좋아했다. 어린 시절 진주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 갈 때마다 항상 할아버지 집 지붕 위의 밤하늘을 올려다 보던 추억 때문이였다. 그 시절의 별들은 유난히도 무수했고 반짝였다. 장난기 많은 어린아이가 흩뿌려놓은 모래알들처럼, 그 별들은 마치 그대로 내게 쏟아질 듯 아슬아슬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타지생활을 시작한 뒤로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봤자 떠있는 별이라곤 없단걸 점점 깨달았기 때문이였을까.
사람들은 그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또래의 친구들은 변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나도 변해가야함을 느꼈다. 다들 시간이 지나자 예전처럼 큰 꿈은 꾸지 않게 되는 법, 손을 쭉 뻗으면 닿을 수 있겠다 싶은 꿈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책임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점점 현실 가능한 반경 내에서 활동하는 것과 같았다.
졸업을 해야지. 취직을 해야지.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야지. 어딘가에 소속되어야지. 내 자신에게 되뇌이던 메아리는 현실 밖의 울타리에 있던 내 자신을 울타리 안으로 모질게 몰아붙였다. 현실과 어울려야 했기에 잘 시간도 부족했던 내게 꿈을 꾼다는 건 사치였다. 그렇게 난, 어린시절을 통해 겨우 정의해왔던 내 자신을 지워갔다.
두려웠다. 이렇게 현실이란 건 모두를 변하게 했다. 나 또한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는 걸까. 어른이 되는 것은 결국 현실에 순응해야 하는 것일까... 어른이 되기 싫었던 나는 어른과 아이, 그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며 나날이 세분화되는 고민의 갈래에 대응하기엔 아이로써의 나는 역부족이였다. 구체화된 해결책을 만들 수 있는, 어른의 내가 필요했다. 그래서 한번은 내 꿈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었다.
나는 포기란 건 정말 쉬운 것인줄 알았다. 간절히 이뤄야만 하는 그 꿈의 무게에서 해방되는 심정은 그야말로 상쾌하고 가벼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포기를 겪고 난 뒤 알았다. 포기는 결심 했을 때 보다도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용기를 내기엔, 아직도 난 너무 이 꿈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안녕이라 말하지마, 빙봉
인사이드 아웃을 본 사람은 다들 기억에 남는 캐릭터로 꼽는 빙봉. 주인공 소녀인 라일리가 어린 시절에 만든 상상속의 친구인 이 빙봉은 울면 눈물 대신 사탕이 나오는, 아주 비현실적이지만 이상적인 캐릭터다. 이 캐릭터를 지켜보며 마치 어릴 적 꿨던 나의 꿈이 떠올라 어딘가 익숙함을 느꼈다. 뭔가 서투르고 바보같지만 없으면 허전하고 잔정이 남는 존재. 하지만 내가 애정하는 이 캐릭터는 영화 후반에서 라일리를 위해 결국 자신이 잊혀지는 길을 선택하며 스토리에서 사라진다.
Take her to the moon for me... Okay?
나 대신 라일리를 달나라에 보내줘... 알았지?
영화의 결말에 빙봉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 라일리가 다시 떠올리지 않을 무의식 속에 자리잡아 있거나, 어쩌면 이미 지워진 기억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라일리의 일상에선 빙봉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내 일상엔 빙봉의 잔상이 계속 맴돌았다.
빙봉을 마주하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아직 내 안의 빙봉에게 안녕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저 나이만 먹었을 뿐 어른이 아닌 내 앞의 길이 험할지라도, 아직은 닳도록 쥐어짜내 빛바랜 용기라도 품고, 책임지진 못할 꿈이라도 꾸고 싶다는 것.
나도 안다. 어른과 아이 사이, 그 길을 헤맨다는 것이 엄청나게 힘든 일이라는 것. 하지만 철이 없는 행동이라도, 세상 물정 모른다고 해도 나는 이렇게 좀 더 헤매고 싶다. 그렇게 헤매다 도착한 곳이 열렬한 환영지가 아닌, 풀 한포기 안 나있는 불모지라도. 그 끝에 다다랐을 때의 내 모습이 한사람 몫을 할 줄 아는 사람의 모습이라면 이때까지의 모든 헤매임 또한 다 의미있는 순간이지 않았을까.
그러니 더이상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해 혼란스럽지 않으려고 한다. 이 길에서 아직 헤매이고 있음을,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이 시간을 감사하게 여기기로 했으니까. 그러니 빙봉에게 굿바이 인사는 나중으로 아껴두고 싶다. 정말 아주 나중으로.